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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박 육아 체험기
05/20/19  

나는 남편이 아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꽤나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요리를 나보다 즐기기도 했고 가사나 육아에도 꽤 적극적이라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함께 해왔다. 아이 목욕도 나보다 꼼꼼하게 잘 시켰고 나보다 더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과 보드 게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결혼 한 번 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경제 활동을 할 때면 물심양면 적극 협조했고 가사나 육아가 전적으로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어느 정도는 애를 쓰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미국에 있고 둘이 모두 맞벌이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역시 한국 남자였던 것일까…… 아니면 한국 생활이 어쩔 수 없었던 것인가. 한국에 온 이후로 점차 남편은 평범한 일반 한국 아빠화 되어가고 있었다. 새벽에 나가서 애들 취침 후 귀가하고 집에 있는 주말에는 피곤해서 쉬고 싶어하고 어느새 아이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편하게 생각하는 그런 대다수의 전형적인 한국 가정의 모습 말이다.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작하자 저녁 7시 30분에 귀가하던 남편이 한 시간 빨리 귀가하자 나는 삶의 질이 변화될 듯이 환호했었다. 그러나 매일 만성피로에 찌든 남편은 한 시간 일찍 귀가해서도 9시면 취침하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 달콤하지도 않았다. 아빠가 있으나 없으나 아이들을 챙기고 돌보고 잔소리하는 것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고 내 잔소리 강도가 높아지면 남편은 이따금씩 아이들을 야단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홀로 육아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이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남편과 공유하고 의논하고 함께 계획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나를 힘들게 했다. 남편은 우리 아이가 몇 반인지 몇 번인지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을 테니깐. 그나마 아이 학년이나 생일이라도 정확하게 기억한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요일 별로 달라지는 방과후수업, 학원 스케줄은 물론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나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이름도 알 턱이 없다. 그나마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몇 아이들의 이름도 매번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무슨 단원을 공부하는지 수행평가나 시험 기간은 언제인지 요일 별 숙제나 준비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조차 없을 것이다. 남편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관심이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의 일이다. 그저 이런 것들은 남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매일 네 명의 아이들의 이런 것들을 챙기느라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고 잠깐이라도 내가 소홀하면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마는데 말이다.

 

이런 소소한 일들을 꿰고 있느라 늘 머릿속이 복잡한 내가 신세한탄이라도 하려 들면 그 소리가 듣기 싫은지 “아이들이 알아서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둔단 말인가?  바로 이런 남같이 동떨어진 말이나 행동들이 각자의 역할에 대해 더 분명하게 선을 그어 버리는 것만 같이 섭섭하기까지 했다.  본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그만두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한국의 모든 엄마들에게 표창장이라도 만들어서 주고 싶다. 전업주부, 워킹맘을 막론하고 한국의 엄마들은 대부분 이 독박 육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라 당연한 듯 혼자 해내야 하고, 맞벌이를 하는 워킹맘은 억척같이 일과 육아를 병행해내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남자들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가사나 육아는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저 거들 뿐’ 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지배적이다.

 

물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가정을 위해 만성피로의 몸을 이끌고 열심히 달리는 남편들의 녹록지 않은 상황도 딱하기는 하다. “옛날 아빠, 엄마들은 다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요즘은 그래도 얼마나 많이 변했냐……” 라고 한다면 이 이상 더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겠지만 어찌 되었든 독박 육아는 너무나 고되고 외로운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일생 동안 최소한 일 년 정도는 꾸준히 주부 (엄마 역할을 겸한)로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다만 일 년이라도 주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주부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어떤 취급을 받으며 인식되는지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절대로, 결코, 죽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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