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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
02/11/19  

가족들과 경주 여행 중이다. 경주는 세계적인 역사 문화 관광 도시로 국내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매번 후보에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늘 최종 선택에서 밀려 마지막으로 경주를 찾았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희미한 기억과 빛 바랜 사진으로 유추해보건데 지금의 나보다 젊은 부모님과 함께였던 것 같다. 경주는 초행이나 다름없다 보니 이번 2박 3일 여행을 계획하며 다소 위험한 욕심이 작용했고 결국 마지막 밤인 지금 기진맥진한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다.        

 

불국사, 석굴암, 천마총, 첨성대, 동궁과 월지, 문무대왕릉, 감은사지 경주 온천 등 경주 추천 관광지를 빠짐없이 둘러보고 매스컴과 SNS에서 극찬한 맛집들도 부지런히 찾아 다니다 보니 여행 첫날이었던 어제는 2만 보, 오늘은 만2천 보 정도를 걸어 다녔다. 다행히 기온이 서울보다 따뜻한 늦가을이나 초겨울 날씨로 돌아다니기 적당했지만 관람이 길어지면 아이들을 다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춥다 등등 끊임없이 불평하며 힘들어했다. 잔디밭이나 해변에 풀어놓으면 거센 바람이 불고 모래가 사정없이 신발에 들어가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놀지만 아이들에게 사찰이나 오래된 유적들이 흥미로울 리 없는 것이 당연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비로소 내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가족 여행에 대한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듯했다. 특히 여행중 찍은 사진 속에 엄마 얼굴이 어째서 즐겁게만 보이지않고 뾰로통하거나 피곤해 보였는지 공감하게 되었다. 어릴 때는 여행까지 와서 나에게 눈을 흘기거나 호되게 꾸짖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어서 야속하게 생각하고 볼멘 소리도 했지만 막상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보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멘붕 (멘탈 붕괴)를 수도 없이 경험하게 된다.

 

수많은 관광객 속에서 혹여 우리 아이들이 민폐가 되는 일을 방지하려고 신경을 온통 곤두세우고 부단히 아이들을 단속해야만 하니 온전히 관광을 즐기는 것은 애당초 포기해야만 한다. 여행 내내 “하지마, 뛰지마, 만지지마, 조용히해, 싸우지마”를 끊임 없이 반복 재생하다 보면 왜 이런 고생을 자초했는지 후회막심해지기까지 한다. 그것뿐이랴…… 여행 준비부터 여행 후 짐 정리에 빨래 이야기는 시작하면 입 아플 정도이고 물론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가족에 아이 많은 집의 여행은 대체적으로 험난하고 고되지만 아주 가끔씩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바로 어제 저녁, 텔레비전에 여러 차례 맛집으로 소개되었다는 쫄면집을 찾았다. 이 집은 좀 특이하게 따뜻한 온쫄면이 유명한 집이었는데 맛집 명성에 걸맞게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 가족도 한 시간 정도 대기한 끝에 식당 문턱에 들어설 수 있었고 입구에 깐깐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쓱 쳐다보며 “몇명?” 하고 물었다. “총 여섯인데 아이들이 네 명 테이블에 앉아도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아주머니 눈치를 살폈다. - 어른 둘에 아이 넷을 이끌고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별로 달갑지않은 시선을 많이 받아온 지라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살펴보던 아주머니 인상이 갑자기 온화하게 바뀌더니 다 한 집 아이들이냐고 물었고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환히 웃으시며 상 받아야 한다며 기분 좋은 칭찬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아이들 포크며 덜어 먹을 그릇 등을 살뜰히 챙겨주시고 연신 우리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보내주셨다. 워낙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이라 서비스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음식 맛도 좋았지만 뜻밖의 호의에 기분 좋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종일 관광으로 지치고 피곤했던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매번 가족 여행 중 힘들 때마다 몇 년 후 아이들이 좀 더 클 때까지 무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또 다짐해보지만 이상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또 금새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는 단기 기억력 감퇴 덕분인지 고생스러워도 뭔가 보람 있고 뿌듯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식당에서처럼 간간히 찾아오는 호의나 행운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은 둘째치고 어쩌면 아직은 내가 더 즐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더 많은 곳을 누비고 누리고 싶다. 배낭 하나 메고 나 홀로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던 여행과 달리 조금 귀찮고, 불편하고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이런 것들을 감수하더라도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여행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쏜살같이 야속한 세월은 젊은 나의 어머니를 할머니로, 투정하던 아이였던 나를 야단치는 어머니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엄마는 가끔씩 추억에 잠긴 얼굴로 말씀하신다.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가족 여행 다니던 때가 인생의 봄날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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