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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 10년차지만
04/29/24  

내게 운동은 좋아서 하는 게 아니고 잘해서 하는 게 아니고 오직 살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나마 내가 가장 오랫동안 한 운동을 꼽으라면 아마도 필라테스일 것이다. 처음 시작은 30대 중반 미국에서였다. 개인 PT와 헬스장에서 약간의 헬스로 나름 자신감이 생겼던 나는 뭔지도 모르고 필라테스를 얼떨결에 시작했다가 내 힘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리포머에서 굴러 떨어진 경험이 있다. 우당탕탕 별이 몇 개 왔다 갔다 했지만 아픔보다 쪽팔림이 컸던지라 다시는 리포머 위에 올라서고 싶지 않았더랬다.

그때부터 쉬지 않고 필라테스를 했더라면 필라테스 강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체형 교정이나 더 건강한 몸 정도는 꿈꿔봤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할리 없다. 나는 타고나기를 몸 쓰는데 영 재주가 없는 사람인 데다가 필라테스도 쉬었다가 다시 했다가를 반복해 왔고 다시 시작할 때마다 필라테스 입문자와 다를 것이 없었으니 실력도 몸 상태도 여전했다. 

지금은 나와 상황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동네 필라테스 센터에 등록해서 다니고 있다. 작년에 개업한 센터로 집에서 5분 거리이고 수업 시간도 많고 강사들도 무난해서 꽤 만족하며 다닌다. 필라테스는 내 몸의 무게를 지탱할 줄 알아야 하며 신체 구석구석을 내 의지대로 통제하고 움직이는 운동이다 보니 이때만큼은 오롯이 내 몸에 집중할 수 있어서 참 마음에 든다.

이렇게 꾸준히 필라테스를 해왔다면 이제 척하면 척, 그룹 수업 여섯 명 중 에이스가 될 만도 하지 않을까? 하고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나의 몸은 어찌나 정직한지 매 수업마다 온몸이 후들거리고 송골송골 맺히던 땀은 수업 절반쯤 지나면 이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기까지 한다. 아니 헬스장에서 3-40킬로 무게를 치는 것도 아니고 전속력 스피드런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기구 위에서 다리 하나 들었다 내렸다 하고 등을 둥글게 말아 배꼽 보며 내려갔다 올라갔다 할 뿐인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필라테스를 해보면 아주 간단해 보이는 동작도 제대로 완성시키기 위해 정말 신경 써야 할 것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앞 허벅지가 아닌 엉덩이에 자극이 오도록 자세 교정하기, 귀와 어깨를 멀어질 수 있게 날개뼈 끌어내리기, 허리 꺾이지 않게 배에 제대로 힘주기, 골반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무게중심을 찾기 등등 강사님의 지적대로 자세를 만들다 보면 숨 쉬는 것 하나, 발가락에 힘주고 빼는 것 하나 나 편한 대로 무턱대고 할 수 없게 된다.

최근 내가 가는 그룹 수업에 나보다 연배가 들어 보이는 몇 분이 새로 오셨다. 정면 거울을 통해 곁눈질로 몇 번 훔쳐봤는데 다른 운동은 몰라도 필라테스는 처음이신 듯하다. 스트레칭할 때 유연성은 좋으신 걸 보니 요가를 오래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필라테스가 생소하시다 보니 강사님의 설명과 지적이 부쩍 늘어났다. 하나의 자세에서 다음 자세로 넘어가기까지 설명이 너무 길어지면 자세를 유지한 채 기다리는 사람들의 애간장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게 해보면 알겠지만 10초 동안 같은 동작을 다섯 번 하는 것보다 10초 동안 같은 동작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전은 나보다 나이 많고 나보다 초보이고 나보다 서툰 그분들이 죄다 나보다 날씬하다는 사실.

필라테스를 여직 하면서도 별 변화가 없는데 왜 계속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래도 이만한 운동이 없으니깐? 다른 운동에 비해 가성비도 좋고 집 근처에 필라테스 센터가 즐비하니깐? 이렇게라도 운동을 하면 미약하나마 근력을 키우진 못해도 유지라도 하겠지 싶어서? 체중 역시 줄진 않아도 적어도 양심의 가책은 줄어들겠지? 힘들었지만 그래도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맛이 참 맛있어서?  그래서 나는 매주 2, 3회 50분씩 필라테스를 하면서 나도 나름 운동하는 여자라고 위안을 삼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도 필라테스에서 열심히 엉덩이를 뿌시고(부수고) 왔으니 죄책감을 조금 덜어내고 오늘 저녁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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