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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이 슬픈 나이
04/08/24  

봄은 꽃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봄을 알리는 꽃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도 마구 흔들린다. 그게 꽃 때문인지 봄 때문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꽃의 세계에도 나름 규칙이 있어서 개화 순서가 다 다른데 매화와 산수유로 시작해서 목련, 개나리, 그리고 벚꽃, 이어서 유채꽃, 철쭉까지 봄꽃들의 향연은 참으로 신비하고 아름답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매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 그때가 되면 "여러분, 이제 진짜 봄이에요!" 하고 봄이 왔음을 당당하게 선포하는 듯하다.

내가 사는 송파구에는 유독 벚꽃나무가 참 많은데 그렇다 보니 벚꽃시즌이 되면 우리 동네 곳곳은 그야말로 인사 인해가 된다. 난리 난리 그런 난리통이 없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꽃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어쩌면 나는 꽃에 무관심한 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꽃에 의미를 많이 두는 사람들은 결혼식 준비를 할 때도 꽃에 꽤나 큰 비중을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웨딩꽃에서 내가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것은 가성비였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 치르는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예산이 빠듯한 건 말할 것도 없지만 꽃에 큰돈을 들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침 결혼식이 성탄 직전이었고 성당 안이 포인세티아로 꾸며져 있었는데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직장 동료가 구해온 녹색 아이비로 웨딩 아일을 꾸미고 부케도 새빨간 포인세티아에 맞춰 빨간색으로 했다. 

그렇게 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나도 이제는 매년 벚꽃 시즌이 되면 꽃구경을 다닌다. 벚꽃 시즌만 되면 좀비 떼처럼 빽빽하게 몰려다니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감탄하고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꽃 사진 찍는 꼰대, 몰려다니며 꽃구경하는 아줌마쯤으로 보이려나?  

나도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너무 예쁘다. 거기 서봐. 내가 찍어 줄게." 푸릇푸릇 싱그러운 커플, 올망졸망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 손을 잡고 유모차를 밀고 산책 나온 가족, 꽃보다 더 화려한 복장이 지나쳐 보이지만 어딘지 귀여운 중장년층, 벚꽃 단체 관광이라도 나온 듯한 외국인 관광객들, 자전거, 스쿠터, 유모차, 휠체어 등 바퀴 달린 모든 것들까지 꽃을 보기 위해 총출동한 듯하다. 사진 찍는 모습들도 제각각이다. 벚꽃 사진에만 집중하는 사람, 벚꽃은 그저 배경일 뿐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사람, 과감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 사진 찍겠다고 포즈를 잡긴 했지만 부끄러워 쭈뼛쭈뼛한 사람 등등 보고 있으면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남녀노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어딘지 기분 좋게 들떠 있고 또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올해는 유난히 꽃샘추위가 길어서 벚꽃이 피기까지 굉장히 뜸을 들였다. 그래서 벚꽃 없이 벚꽃축제가 펼쳐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피자마자 떠나보낼 생각을 해야 한다니 어딘지 마음이 좋지 않다. 어릴 때는 이런 것은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꽃이 피든 지든 상관도 없었고 아쉽지도 않았다. 꽃이 피는 것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으니 꽃이 지는 것 또한 아쉬울 리 없었다. 

그런데 어느덧 유독 짧디 짧은 벚꽃 시즌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니... 이것이 나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더더욱 서글퍼질 것만 같다. 언제부턴가 눈처럼 날리는 벚꽃을 보고 있자면 아름다움보다는 쓸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땅에 나뒹구는 꽃잎들이 빗자루에 쓸려가는 것을 보면 이틀 전 나를 기쁘게 해 줬던 그 꽃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린다. 행복도 감동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벚꽃이 지는 것을 보며 배운다. 내년에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도 아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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