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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함께 걷자!
03/18/24  

오늘도 친구로부터 '불참'이라는 문자가 도착한다. 매일 아침 함께 걷는 친구가 연 이틀째 불참이다. “오케이”라고 답을 할 뿐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오지 못할 형편이니까 못 오는데 '왜 못 오냐?'고 물을 필요가 없다.

늘 걷던 길인데 혼자 걸으니 사뭇 다른 느낌이다. 둘이 걸을 땐 보이지 않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을 땐 그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못 보았던 모양이다.

푸른 나무들이 주는 생동감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그 푸른 잎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눈을 돌리니 길가에는 그 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작고 하얀 꽃들이 즐비하다. 걸음을 멈추고 꽃 하나하나와 마음으로 얘기하고 눈으로 듣는다.

나뭇가지에 앉아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속삭임도 잠시 엿듣는다. 사랑이 듬뿍 담긴 밝고 명랑한 구애 소리에 대한 응답인 듯 비음 섞인 화답 소리가 청량하고 달콤하다.

어느 시인이 말했다.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을 발견했을 때 가장 깊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마음의 평화가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을 발견했을 때 얻어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잎들이 하루하루 더 푸르러지고 있음을 느낀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청아한 새소리를 듣고 소박한 들꽃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보지 못 하고 듣지 못 할 수는 있어도, 보고 듣는다면 누구나 자연이 주는 평화를 거부할 순 없다.

호수를 한 바퀴 돈다. 강태공 서너 명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물위를 주시하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잽싸게 낚싯대를 잡아챈다. 낚싯대가 활처럼 휜다. 낚싯줄 끝에서 팔뚝만한 물고기가 퍼덕거린다. 강태공의 팔도 부르르 떨린다. 강태공은 물가로 끌려온 물고기를 뜰채로 담아 그 무게를 갸름해보더니 이내 다시 놓아준다. 강태공의 환한 웃음이 아침 햇살에 섞여 허공을 가른다.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낚시꾼의 마음에도 봄이 한가득이다.

오리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헤엄치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물고기들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오리와 거위, 두루미, 자라, 거북이들이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간다. 이들에게도 봄은 찬란한 계절일 것이다.

호수 한가운데의 분수대는 쉬지 않고 물꽃을 피워낸다. 물소리가 파란 아침 하늘로 퍼진다. 하늘에서는 구름들이 아침 쇼를 펼치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고 무거운 옷을 걸치고 무겁고 음산한 몸짓을 펼치며 한 바탕 비라도 퍼부을 것 같더니 어느새 하얀 솜뭉치로 변신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부드러운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봄의 향연을 만끽하며 느리게 걸으며 매일 아침 마주치는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몸이 불편한 아들과 함께 걷는 아빠, 강아지와 함께 걷는 씩씩한 걸음걸이의 남자, 반바지 차림이 잘 어울리는 허스키의 아저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그들은 모두 내게 묻는다. 오늘은 왜 혼자 걷고 있느냐고.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단순한 관계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며 서로에게 작은 행복을 전한다. 그래서인지 안 보이는 날이면 내심 궁금해진다. 이사를 갔는지, 혹 몸이 아픈지...... 그러다 다시 만나면 반가움은 더 커진다. 인사 한마디가 쌓이고 쌓여 어느새 서로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됐기 때문이리라. 매일 같이 걷는 친구는 오죽할까.

내일은 ‘불참’이라는 문자 대신 환한 목소리로 ‘굿모닝!’ 인사하며 손을 흔드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함께 걸으며 신록과 들꽃, 호수와 하늘, 새들의 밀어와 부드러운 바람까지 함께 느끼고 싶다. 이렇게 찬란한 봄의 한복판을 향해 발맞추어 걷고 싶다. 함께 느끼는 봄은 분명 더 화려할 것이다.

친구야! 함께 걷자!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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