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4/24  

가끔 생각한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일까? 대운이 따르는 사람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운이 나쁜 편은 아니라고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여러모로 사는데 이로울 테니깐. "운"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운은 어느 정도는 존재하고 굳이 사주팔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이 그 운명을 거스르거나 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처럼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뜻이나 계획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슨 일이든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 "운이 좋다"라고 말한다. 부모, 외모, 능력 등 그저 타고나길 잘 타고난 사람, 자신의 능력이나 가진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나 위치에 오르는 사람,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가도 뜻밖에 귀인을 만나 어려움을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사람, 노력보다 더 큰 횡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부럽다 못해 배가 아플 때도 있었다. 운칠기삼은 세상에 모든 일에 있어서 운이 70%, 노력이 30%,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음을 이르는데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력해서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건 왠지 부당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물론 나의 운은 70%를 다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성당에서 주일학교 엄마들 모임인 자모회 신년회가 있었다. 이런 행사를 몇 번 도모하였으나 매번 참석율이 저조하였는데 이번에는 서른 명 가까이 참석을 했다. 참석율만큼이나 좋은 분위기가 무르익고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를 걸고 추첨이 진행되었는데 대여섯 명이 당첨되어 선물을 받아갔다. 못 받은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하자 신부님께서 즉흥적으로 본인의 애장품들을 잔뜩 들고 나오셔서 추가 추첨을 진행하셨다. 총 참석자 중 대부부의 인원이 모두 하나씩 선물을 받게 되었고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신부님께서 선물을 잔뜩 들고 나오셨을 때 나도 속으로 '에이... 나도 뭐 하나쯤은 되겠지'하고 살짝 기대를 했었다. 옆 테이블 1조는 다섯 명 전원이 당첨되었고 내 앞, 내 옆 사람들도 당첨되니 나에게도 그 정도의 운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명 중 못 받은 사람이 다섯 명쯤 되었으려나... 내가 그 중에 하나였다. "이 정도면 너무 운이 없는 거 아닙니까?"하고 농담을 하며 깔깔 웃었지만 돌아와서 남편과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한 걸 보니 아주 조금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당첨자가 서른 명 중 다섯 명일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서른 명 중 다섯 명만 탈락이고 그중 한 명이 나라는 것은 은근 신경이 쓰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추첨 운은 없었다. 심지어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예매도 시간 맞춰 들어가 한두 시간씩 대기를 해봐도 번번이 미끄러졌다. 요령이 없는 것인지 운이 없는 것인지 몇 년째 놓치고 나니 이젠 점점 의지가 약해진다. 어릴 때는 친한 친구들이 나만 빼고 같은 반이 되거나 같은 조가 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건 진짜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보니 왜 나만 운이 나쁠까 하고 한동안 괴로워했던 것도 같다. 

노력 없이 공짜로 뭔가를 얻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내가 준비하고 노력했을 때 결과, 내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인복과 같은 것은 나를 함부로 배반하지 않았다. 굳이 따져보자면 지금까지는 노력이 70%, 운이 30% 정도의 삶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의 말처럼 운에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20년 전 신혼여행으로 갔던 태국에서 쓰나미를 피해 하루 전날 살아 돌아왔을 때 이미 나의 운을 다 끌어다 썼을지도 모른다. 그 후에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덤이나 다를 게 없고. 하지만 나는 내 운에 한계를 정하고 싶진 않다. '내 팔자가 이렇지 모...' 하면서 체념하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 '그동안 힘들었으니 앞으로 꽃길만 걷겠지' 하며 무턱대고 해맑을 수도 없다. 아직도 알 수 없는 내 운명을 따라 웃고 울다 보면 그 끝에는 부디 나에게 주어진 소임과 하늘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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