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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체험기
02/19/24  

얼마 전 우리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공중파를 타고 방영되었다. "너를 만났다"라고 3년 전 죽은 큰 아들을 가상현실로 만나는 내용이었는데 다큐멘터리 특성상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송 출연을 하고 나니 유튜브, 블로그, 카페 및 각종 SNS에 우리 방송에 대한 썰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방송 전부터 남편이 방송 후에 들려올 이야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지만 사람의 호기심은 참으로 못 말리는지라 자꾸만 보고 싶어서 한 며칠 열심히 찾아봤다. 대부분은 우리의 아픔에 가슴 아파하고 우리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선한 글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진심으로 위로하고 기도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정말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라면 망설이다 그만두었을 위로의 댓글들을 하나하나 찾아 읽으며 눈물도 흘렸고 미소도 지었다.

개중에는 악플 비슷한 의아한 글들도 있었다. 물론 악플이라고 연예인 기사에 달리는 비방성 악플이나 정치 기사에 달리는 폭력적인 악플은 아니었다. 좋게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수준이긴 했다. 하지만 굳이 애써 이런 댓글을 남겨야만 했을까 싶긴 했다. 이런 비아냥이나 조롱의 글을 남기면 뭘 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기억나는 악플 몇 가지로는 엄마 아빠가 죽은 아들을 만났는데 왜 대성통곡을 하지 않느냐, 다시 만나서 저것밖에 할 말이 없냐? 부모가 시청자보다도 안 울어서 황당하다, 방송국에서 써준 대사를 읽는지 너무 어색하다, 자식을 잃고 어떻게 사나? 나라면 못 살고 따라갈 것 같다. 죽은 아이 엄마가 너무 잘 사는 것 같아서 좀 이상했다, 가상현실이 무슨 만화 같고 너무 구려서 바로 채널 돌렸다 등등.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충분히 떠오를 수 있는 생각이다. 내일도 아닌 남의 일인데 무슨 생각을 못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건 혼자만 생각해도 되지 않나? 굳이 이런 댓글을 쓰면 재미있나? 아니면 속이라도 시원한가? (속이라도 후련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솔직함을 빙자한 무례함이 참 어이없을 뿐이다.

어떤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에는 500개가량의 댓글이 달렸길래 뭐가 이리 많나 싶어서 들어가 봤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인이 너무 궁금해서 올리는데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죽은 자식을 다시 만나서 별말을 안 하는 걸 보면서 너무 허무했다며 그렇게 할 말이 없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댓글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가상이라 자식 같은 느낌이 안 들어서 그럴 거다, 슬픔의 표현이 다 다른 거다, 그냥 좀 보지 따지지 좀 마라, VR 장면이 별로이긴 했다 등등 다양한 의견이었고 다양한 반응들을 읽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별안간 두 명이 싸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작성자에게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 무례하게 꼭 이런 식의 글을 올려야만 했냐"는 댓글을 달았더니 작성자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 내가 뭐가 무례하냐"하며 치열한 댓글 공방을 시작한 것이다. 이게 수백 개의 진흙탕 댓글 전쟁으로 번지고 나니 나중에는 말도 안 되는 하찮은 주장과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인신공격과 욕설로 도배되어 버렸다.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도 잊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는 네가 결혼 못한 노처녀라 그 모양 그 꼴이다, 너 같은 구질구질한 아줌마가 이혼 안 당하는 게 신기하다 등등 정말 읽고 있는 것마저 낯 뜨겁고 너무 한심해서 더 이상 댓글 보기를 포기해 버렸다. 그들은 그깟 댓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자기가 쓴 글이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하면 어찌 그리 부끄러운 말들을 쏟아부을 수 있겠는가?

나는 온라인 사업을 오래 해왔고 SNS 활동이나 글 연재도 오랫동안 해와서 악플을 전혀 경험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위의 경우는 타격이 그리 심각한 수준도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보는 순간 기분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도 유튜브 검색을 할 줄 아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런 댓글을 읽게 된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걱정스럽고 화가 난다.

세상에는 수많은 취향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생각을 글로 남길 때 신중을 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댓글을 쓸 때는 상대방을 면전에 두고도 할 수 있는 말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자식 잃은 부모를 앞에 두고 "왜 그것밖에 안 울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익명이라고 비겁하게 뒤에 숨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내 얼굴과 내 이름을 내걸고도 그토록 당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하지만 알고 있다. 대부분의 (예상하건대 97% 이상) 보통 사람들은 댓글을 달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은 나처럼 조용히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2%는 용기를 내어 감동의 댓글을 남기는 정말 훌륭한 사람들, 나머지 1% 미만이 문제인데 거론할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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