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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에서
02/19/24  


안과에 갔다. 눈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 해 전 주치의가 ‘안과에 가서 백내장, 녹내장 등의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권유해 처음 방문했었다. 그 이후로 안과 병원 측에서 진료 후에 매번 다음 진료 날짜를 정해준다.

10시 30분에 오라고 했는데 10시 28분에 도착했다. 늘 그랬듯이 도착하자마자 방명록에 이름과 도착시간, 예약시간 등을 기입하고 로비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로비에는 나 말고도 서너 명이 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이름을 호명하며 검사실이 있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작은 방에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한 대여섯 명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실내가 비좁게 느껴져 복도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15분쯤 기다렸을 때, 한 간호사가 와서 눈에 안약 같은 액체 몇 방울을 넣어 주면서 검사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눈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닦아도 좋은데 눈 안에 있는 것을 닦지는 말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시키는 대로 했다.

25분쯤 지났을 때 검사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동공 확장 검사라며 턱을 괴고 눈동자로 한 방향만 보라고 했다. 왼쪽 눈으로는 오른쪽을 오른쪽 눈으로는 왼쪽을 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 검사가 끝난 후 또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렸다. 병원에 도착한지 50여 분이 지났을 무렵 또 불렀다. 이번에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두 대의 검사기 가운데 한 대에는 이미 한 사람이 앉아 열심히 검사받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계의 화면을 바라보고 받침대에 턱을 괴라고 하더니 검사 방법을 알려주었다. 지난번에도 똑 같은 검사를 했었다. 크건 작건 불빛이 반짝일 때마다 손에 쥐고 있는 리모컨을 누르는 아주 쉬운 일이다. 병원에 올 때마다 했던 검사인지라 어떻게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간호사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처음 온 사람에게 하듯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버님, 아버님하면서.

나보다 먼저 검사를 받고 있던 사람이 검사를 마치고 나가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는 그에게 검사 방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친절한 듯했지만 빨리 검사를 끝내기 위해 서두르고 왜 이것도 못하냐는 듯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검사 방법을 되묻는 환자의 큰 목소리와 다시 설명하느라 짜증이 난 듯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 검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잠시 후 새로 온 환자가 들어오자 간호사는 내가 사용하던 검사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앞의 기계로 가서 검사를 다시 하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했다.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귀가 잘 안 들리는지 큰 목소리로 얘기하는 환자와 간호사의 억지로 친절한 음성이 섞여 들려와 도저히 집중 할 수 없었다. 눈에 이상을 느껴 온 것도 아니고 주치의의 권유로 안과 검진을 받은 이후 무조건 석 달에 한 번씩 오라해서 가면 똑 같은 검사를 반복하고 있다.

안과 질환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예약한 환자를 기다리게 하고 또 검사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 노출시킨다면 누구라도 유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나는 잦은 검사가 ‘드디어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나 아닐까 하는 불쾌감마저 들었다. 문제가 없는데 3개월에 한 번씩 같은 검사를 반복적으로 받는 것은 의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어 던지고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검사 받다 말고 왜 그냥 가셨냐?"고 물었다. 사실대로 내 기분을 말했다. "언제 한가할 때로 다시 날을 잡아 줄까요?"라고 다시 묻기에 그냥 놔두라고 했다.

예약을 10분 간격으로 잔뜩 잡아 놓고 환자들이 줄지어 기다리게 한다. 환자들은 예약한 시간에 진료 받지 못하고 검사마저도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 좁은 방에서 옆 사람 신경써가며 검사 받아야 하고 의사와 만나는 시간은 2~3분도 채 안 된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물론 모든 병원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주치의를 보러 가면 결코 기다리는 법이 없다. 언제나 방명록에 기록을 마치면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다. 환자와 다음 환자 간의 진료 예약 시간 간격을 넉넉하게 잡아 환자는 여유를 가지고 병원을 찾은 이유를 세세하게 말하고 의사는 귀 기울여 듣는다. 그렇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이 치유 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친절한 듯한 목소리나 족보에도 없는 아버님, 어머님 호칭이 배려일 수 없다.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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