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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던 날
02/12/24  

사무실 계단을 오르는데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작년에 물이 새서 수리를 했는데 그 자리가 또 샌다. 그때 고쳐준 분께 전화를 하니 받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마침 앞 사무실 대표가 한 사람을 소개해 주어 전화하니 바로 달려와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와서 보수를 했다. 사진까지 보여주며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거기에 필요한 조처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비가 제법 오자 여전히 샜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 물이 계단을 타고 흘러 아래층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연락하니 비 그친 뒤에 보잔다. 비는 하염없이 내렸다. 낮에도 밤에도.

그칠 줄 모르고 비가 내리던 지난 주 월요일 친구가 같이 점심먹자고 문자를 보냈다. 국밥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도로가 침수되어 자동차들이 물속을 헤엄치듯이 다니고 있었다. 식당에 앉아 왼편을 보니 양동이가 놓여 있다. 가만히 보니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무심코 내가 앉은 자리 바닥을 보니 흥건히 젖어 있지 않은가. 내 오른편 천장에서도 물이 떨어져 내 쪽으로 흘러와 고여 있는 거였다. 좌우가 다 새고 있었다.

친구가 비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자기가 세 준 집도 샌다고 세입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식사 후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맥도날드로 갔다. 맥도날드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파란 줄이 쳐있고 테이블 위에 양동이가 놓여 있다. 맥도날드도 샌다. 가는 곳마다 새고 있었다.

친구가 커피를 입에 대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세입자의 전화였다. 지하실 벽에도 물이 스며들고 있다며 언제 올 거냐고 묻는 전화였다. 친구는 서둘러 떠났다. 혼자 남아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빨래골 살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비만 오면 이곳저곳에서 물이 샜다. 빗물이 새는 천장에는 실을 달아 놓아 실 따라 물이 흘러내리도록 하고 바닥에 양동이나 세수 대야 등을 받쳐 두었다. 그리고 가득 차기 전에 밖에다 버리고 다시 받쳐 놓았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부엌 바닥에서 물이 솟기도 했다. 방안에 새는 비는 차는 대로 갖다 버리면 해결되었지만 부엌 바닥에서 솟구치는 물은 계속 퍼서 밖으로 내다 버려야 했다. 어린 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초등학교 다니는 내가 밤을 새어 가며 물을 퍼내야 했다.

한 번은 윗집의 축대가 무너져 우리 집을 덮쳤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손상되지는 않았으나 흙무더기가 건물에 닿아 있었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흙을 퍼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고 빨래골 사람들은 모두 비가 올 때마다 방에서 물을 받아냈고, 부엌에서 물을 퍼냈었다. 1960년 대 빨래골 이야기이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남가주에 거의 1년 동안 내릴 비가 단 3일 동안 퍼부었다. 300여 곳에서 산사태가 났고, 40여 채의 주택과 건물이 파손됐다. 이번 폭우는 1877년 강우량 측정을 시작한 이래 역사상 세 번째 많은 강우량으로 기록되었다. LA 고지대인 볼드윈 힐스 지역, 베벌리 글렌 지역, 벨에어 등지에서 발생한 산사태 등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지금도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폭우로 도로가 움푹 파이는 팟홀도 많이 생겨 이로 인한 차량 손상과 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2024년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영락없이 1960년대 한국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남가주가 사막지역이라 배수 시설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1993년 내가 미국에 오던 해부터 비가 많이 올 때마다 듣는 소리다. 하지만 비록 사막지대라도 폭우 등 우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일에 충분히 대비했다면 비로 인한 불편과 피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전 지구적으로 자연재해가 증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지진과 가뭄, 산불, 폭염에 더해 이제는 폭우까지.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시나 카운티, 주 정부를 비롯한 각 지방 정부부터 연방 정부에 이르기까지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꼼꼼하게 예측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하게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들 각 개인들도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재해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 그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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