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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만 가족
01/08/24  

가깝지만 먼 사이, 다 알면서도 잘 모르는 사이, 닮았지만 너무 다른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라고 한다. 가족에 대한 마음이 복잡 미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하고 애틋하다가도 부담스럽고 불편할 때도 있고 밉고 원망스럽다가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것이 또 가족이다.

스물여섯에 결혼해서 독립을 하기 전까지 가족을 생각하면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독립해서 내 집, 내 남편과 사는 것은 참으로 신세계였다. 남편이야 대학, 군대, 유학 생활을 하느라 나보다 먼저 독립을 하게 되었지만 결혼 전까지 부모 슬하에 있었던 나에겐 그야말로 처음 느껴보는 자유였다. 단둘이 라면만 끓여 먹어도 맛있고 뭘 해도 재미있고 편안했다. 그렇게 둘만 있는 것이 좋아서 무슨 일이 없으면 굳이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다시 부모님 집으로 자주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 자식이 늘어나면서부터이다. 둘, 셋, 넷으로 아이가 늘어나면서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애 많은 우리 식구를 반겨줄 곳은 많지 않았다. 부모님 집에 가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매번 선물을 잔뜩 받아왔고 나와 남편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밥도 먹을 수 있었고 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 때문에 2017년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시댁과는 가까워졌지만 친정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친정아버지가 1년에 한두 번은 꼭 한국을 방문하셨지만 엄마와 동생들은 6년간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 겨울에 미국에서 부모님과 동생들이 고국을 방문했다. 우리 가족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않느냐며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을 성사시킨 것은 다름 아닌 막내 동생이었다. 

제주도 사는 오빠네 식구가 빠졌지만 6년 만에 모인 우리들은 가족사진도 찍고 맛집과 카페도 가고 홈파티도 하며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아버지의 형제들과 그 식구들도 모두 모였다. 사정상 못 나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만하면 훌륭한 출석률이었다. 2018년인가 아버지 생신 겸 추석으로 우리 집에서 모인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원래 조부모님 모두 살아계시고 맏아들인 우리 아버지가 한국에 계실 때는 더 자주 왕래했었지만 1992년에 우리 가족이 이민을 가고 1999년에 할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이후에는 가족 모임이 예전 같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부모에게 독립한 이후 내 가정은 꾸렸지만 형제자매, 친척들과는 점점 멀어졌다. 멀리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자주 연락도 못하지만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내 아버지, 내 아이,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나마 이 세상에 나와 제일 비슷하고 잘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인생의 굴곡에서 그 어떤 누구보다 가장 강력한 내 편으로 나를 응원해 줄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족이 있어 참으로 든든하고 내가 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게 행운이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시댁은 멀수록, 덜 만날수록 좋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남편 가족 모임도 좋다. 남편이나 시어머니를 통해 이야기로만 듣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는 일은 꽤나 재미있고 반가운 일이다. 마침 얼마 전에 남편의 사촌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온 가족이 출동했었는데 오랜만에 결혼식을 보는 것도 좋았고 (언제부턴가 결혼식 돌잔치 초대가 딱 끊김)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등장하는 옛날옛적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가족과 함께 매일 부대끼며 살 때는 쉽지 않았지만 정해진 공간에 누군가와 너무 가깝게 생활한다면 그게 누구든지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결혼이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관계의 마찰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여기서 대부분의 갈등이 시작되니깐.

가족이라 하면 흔히들 남보다는 더 자주 만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되면 생각만큼 자주 만나지지 않는다. 남은 생에 나의 친인척들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리를 해서라도 가족 모임을 더 자주 추진하고 더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연시에 가족 만남은 내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동과 좋은 에너지를 안겨주었고 올해도 다시 가족을 만날 희망을 품고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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