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이렇게 또 새해
01/02/24  

1년 전 오늘 나는 병원에 있었다. 갑자기 왼쪽 귀가 먹어서 돌발성 난청으로 입원을 한 것이다. 한순간에 멀쩡한 사람의 귀가 갑자기 안 들릴 수 있다는 기막힌 경험을 하며 병원 침대에서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했더랬다. 그렇게 내가 삐그덕거리며 2023년 계묘년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전화위복이라 생각해라, 액땜한셈 치라며 남은 한 해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위로했다.

3월에 10K 마라톤을 이틀 앞두고는 갑자기 왼쪽 발에 족저근막염이 왔다. 분명 멀쩡했던 발인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방바닥에 발을 디디는데 '헉'하는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걷는 것조차 고통스러운데 달릴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친구들까지 마라톤에 끌어들인 터라 어떤 이유에서도 포기할 수는 없었고 결국 스테로이드 주사 열방을 맞고 달려야 했다.

그리고 5월에는 자전거 강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신호등 대기 중에 뒤에서 달려오던 졸음운전 차량이 충돌하여 내차는 폐차되고 나는 몇 달간 한방병원을 드나들며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지금도 신호 대기 중에 자꾸 백미러를 보게 된다. 

가을에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왼쪽 결혼반지가 끼어있는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붓기 시작했고 관절 부위를 스치기만 해도 아프더니 밤이 되자 가만히 있어도 끙끙 앓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 되었다.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손가락 관절에 석회가 생겼다고 한다. 

노안이 심해져서 휴대폰 폰트를 세 칸이나 크게 올려야 했으며 가슴에 물혹이 생겨서 맘모톰 시술도 했고 매년 실시하는 건강검진 결과도 제일 후지게 나왔다. 큰 문제까지는 아니어도 이것저것 추적관리를 해야 할 곳들이 생겨난 것이다. 올해 들어 사춘기가 시작된 시한폭탄 같은 딸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전전긍긍했으며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시작되어 한 달 넘게 14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나의 2023년 계획에 없던 일들이다. 심지어 아무런 경고나 신호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다. 추운데 재킷 안 입고 돌아다니다가 감기가 걸렸거나 시험공부를 안 했으니 시험을 못 봤다와 같은 인과응보, 자업자득 같은 것으로 이해될 문제가 아니었다. 내 의지나 내 생각과 전혀 상관없이 그저 벌어진 일이고 자타공인 계획형 파워 J인 나도 결국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계속 엎어지고 나자빠지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 일에 있어 의연해지고 슬기롭게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전혀 그렇지 않다. 성숙한 어른이 되면 지혜와 인내가 저절로 생길 줄 알았더니 노안과 주름 그리고 뱃살만 늘어날 뿐이다. 

하지만 꽤나 심술궂었던 2023년도 이제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1월 1일,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새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고 큰 축복인가? 지난해를 뒤돌아보면 반성과 후회, 아픔과 고통이 가득하더라도 새해가 시작되면 다 괜찮아질 것 같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실제로는 어제와 하나 다를 것 없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한 지점일 뿐이지만 마치 새로운 장의 첫 페이지, 새 챕터를 펼치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직 아무런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올해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대신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행복을 더 열심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는 항상 단순하다. SNS에 올라오는 아름답고 멋지고 탐나는 것들을 부러워하긴 해도 행복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행복'은 매우 소소하다.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나 성당 의자에 나란히 앉아 미사를 보고 함께 기도하는 정도로 그동안 우리가 늘 해왔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행복으로 떠올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새해에는 이런 행복을 더 많이 만들어 봐야겠다. 

더불어 타운뉴스 가족 여러분들도 소소한 행복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찬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한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