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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초파리
12/26/23  

참으로 해괴하게도 성탄절을 코앞에 둔 12월인데 집안에 초파리가 날아다녔다. 예년에 비해 올 12월이 덜 춥기는 했지만 이렇게 초파리가 날아다닐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음식 주변으로 알짱거리길래 '12월에 초파리가? 올 겨울이 안 춥긴 진짜 안 춥나 보다'하고 말았는데 어느샌가 점점 더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집에 음식물처리기를 새로 구매했는데 그게 원인인가 싶어서 며칠 유심히 주변을 살폈으나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우연히 우리 집에 들어왔다가 쓰레기통에 번식이라도 하게 된 걸까 싶어서 쓰레기통을 싹 비우고 초파리 퇴치제도 열심히 뿌렸다. 그러자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고 나는 '그래 그래봤자 제까짓게 파리 주제에 어디까지 버티겠어?' 하면서 우쭐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전날보다 초파리가 배는 더 많아져 있었고 그렇게 우리 집에 때아닌 초파리 전쟁이 시작되었다. 

깨알만한 초파리 따위라지만 생각보다 퇴치가 쉽지 않자 이거 제법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꺼낼 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날아드는데 손을 휘젓는 정도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놈들은 마시는 음료 컵, 반찬 그릇으로 뛰어들었고 심지어 냉장고 문이 열리면 순식간에 따라 들어오기까지 했다. 특히 과일이나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은 더욱더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었고 음식이 남아도 부엌에 그냥 남겨둘 수 없었다.

음식물을 취급하는 부엌 쪽은 그렇다 치고 언제부턴가 이놈들이 침실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초파리들이 불빛으로 날아와서 내 귓가에서 윙 소리를 내고 내 얼굴 쪽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침실은 나의 최측근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나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인데 초대받지 않은 초파리들이 들어와 설치니 뭔가 점령당한 기분이 들어 몹시 불쾌했다. 일주일이 지나가는데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여간 성가시고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아니었다. 여름철마다 즐겨 사용하던 초파리 전용 살충제는 겨울까지 살아남은 이 녀석들의 질긴 숨통을 끊어놓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아무리 자주 많이 뿌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자 구매욕이 상당한 남편은 아이템빨을 장착하기로 하였는지 이것저것 초파리 퇴치 제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초파리 출몰 지역에 트랩 끈끈이, 하수구를 차단하기 위한 하수구 커버 밀착 매트, 불빛으로 퇴치한다는 초파리 라이트트랩 포충기 등 별의별 게 다 있었다. 남편은 아이템빨을 앞세워 초파리 일망타진을 꿈꿨으나 적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였는지 아무리 잡아들여도 계속해서 또 나타났다. 그리고 이쯤 되니 초파리들이 하수구나 창문에서 날아들어온 게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렇다. 분명 우리 집 어딘가에 숙주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템들을 이용해 퇴치를 계속해나가면서 초파리 숙주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 하수구, 냉장고, 쌀통, 베란다, 고양이 사료통 등 먹을 것이 있는 곳은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초파리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숙주 찾기도 난항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갖은 노력을 했지만 뭘 해도 소용이 없자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내가 집을 비웠을 때 남편이 드디어 숙주를 발견했다고 한다. 부엌 아일랜드 테이블 하단 선반에서 뭔가를 찾다가 정체불명의 검정 비닐봉지를 발견했는데 봉지를 툭 치니 초파리들이 날아올랐다고 한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방치되었던 양파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남편이 그 문제의 비닐봉지를 폐기한 이후로 초파리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틀 정도 지나니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2월의 초파리 소동은 우리 식구들을 꽤나 짜증 나고 번거롭게 괴롭혔지만 초파리 퇴치에 힘썼던 열흘간 우리는 꽤나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주 쓰레기를 비우고 주방을 쓸고 닦았으며 식사 후 설거지도 바로바로 처리하고 음식물을 부엌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으니 말이다. 한 가지 더 이 소동으로 인해 얻은 보너스는 안방 화장실 담배 냄새 해결. 지난 6년간 안방 화장실에서 때때로 몹시 심하게 담배냄새가 나서 정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 밑에 층 이웃은 흡연을 하지 않는다길래 위층 청년을 강하게 의심하며 화장실 천장 환풍구만 의심했는데 문제는 다름 아닌 하수구였던 것이다. 초파리 때문에 하수구 매트를 올려두었더니 초파리 대신 담배 냄새로부터 해방되었다. 

12월 성탄과 연말연시를 앞둔 이 시점에 초파리라니 너무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이 녀석들이 어찌나 대단한지 다른 소재들을 다 제쳐두고 결국 초파리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깨알만 한 초파리 따위가 나를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고 이토록 움직이게 만들다니 결코 하찮게만 볼 수 없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절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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