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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12/04/23  

잔소리가 뭔지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사전을 찾아보고는 적잖게 놀랐다. 잔소리의 사전적 의미가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이었기 때문이다. 이 뜻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애를 써서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릴 때 엄마의 잔소리를 정말 싫어했었다.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구구절절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청소해라" "공부해라" "늦지 않게 가라" 정도인데 이 말을 하기까지 "방이 또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방 치우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냐 백번도 넘게 말하지 않았냐 그럼 이제 알아들을 만도 한데 왜 맨날 똑같은 소리를 입 아프게 해야 되냐 너는 진짜 누굴 닮아서 이러는 거냐"마치 프리스타일 래퍼처럼 속사포로  쏟아붓는 엄마의 잔소리는 그냥 듣기 싫은 소리 그 자체였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는 달라졌을까? 아니! 가끔은 소름이 끼쳤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자 레퍼토리마저 똑같이 엄마가 하던 그 듣기 싫은 잔소리 랩을 그대로 읊고 있는 것이 아닌가?

며칠 전 가슴에 섬유선종을 도려내는 맘모톰 시술을 하고 (쉽게 말해 물혹을 제거한 거임) 다음날 아침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더 누워있으라고 했지만 내가 안 하면 집안일이 사라지기라도 하나? 우렁각시가 대신 해주기라도 한다면 당연히 꼼짝도 안 하고 싶지만 결국 언젠가 내가 할 일을 미뤄 봤자 일만 더 많아지고 힘들어지기 때문에 힘든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그런데 내 몸이 불편하니 모든 것이 다 불편하게 보이네? 결국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었고 출근이 늦었던 남편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인사도 없이 나가버렸다. 

아이 셋도 모두 등교를 하고 엉망이 된 착잡한 마음으로 설거지, 청소, 빨래를 마치고 이제 좀 누울까 하고 방으로 들어왔더니 딸이 교과서를 안 갖고 왔다고 정문에 맡겨달라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이 교과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꽤나 공들여 설명하는 문자였지만 문자 그 어디에도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그래도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고 응원의 메시지와 하트까지 그려 넣은 교과서를 잘 전달하고 왔더니 잠시 후 딸로부터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이제 잠깐 쉬어볼까 하려는데 우리 집 남매 고양이 중 수컷이 평소와 달리 사방팔방 뛰어다니더니 그만 사료 그릇을 깨트리고 말았다. 유리 조각이 산산이 부서져서 치우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없을 때 벌어진 일이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바닥을 쓸고 닦고를 반복하였다. '허구한 날 식구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이놈의 팔자' 하면서 눈물과 한숨을 훔쳐내니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것은 잔소리가 아니고 "조언"이었을 것이다. 조언의 사전적 의미는"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 또는 그 말"인데 바로 딱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분명 나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훈육하고 싶었던 것이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말로 아이를 바르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매번 내 진심과 상관없이 쓸데없이 필요 이상으로 떠들고 꾸짖게 되는 것일까? 왜 나는 진정한 조언이 아닌 쓸데없는 잔소리를 퍼붓게 되는 것일까? 

잔소리를 피하는 3대 법칙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구구절절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기, 둘째는 요구사항만 짧게 전달하기, 그리고 마지막은 말이 끝나면 보태지 않고 종료하는 것이다. 결국은 할 말만 짧게 하란 소리다. 이 세 가지만 잘 지켜도 아이와의 불필요한 언쟁은 피하고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소리를 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위에 세 가지만 지키면 간단히 해결될 것만 같지만 글쎄... 어쩐지 자신은 없다. 심지어 세계 어디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잔소리가 공통적인 것을 보면 이건 거스르려야 거스를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성 고유의 성향과 엄마가 갖고 있는 모성과 책임감이 만나면서 깊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잔소리로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  엄마 노릇이라는 게 참 그렇다. 힘들고 외롭고 참 고되다.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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