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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진해 위원장
12/04/23  

미주 한인 보이스카우트위원회 김진해 초대 위원장이 향년 87세로 11월 26일 별세했다. 비보를 전해준 고인의 장남은 전화기 저편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침묵의 시간은 꽤나 길었다. 나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결국 그가 먼저 비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김진해 위원장은 보이스카우트 발전을 위해 높고 큰 목표로 최선을 다해왔다.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웃음을 지으며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서 돕고 앞장서서 일해 왔다. 필자가 그와 처음 만난 것은 1978년이다. 그 후 한국보이스카우트 서울연맹 소속의 지도자로 각종 행사에서 함께 활동을 했다. 그가 서울 마포지구위원장을 할 때 필자는 성동지구 사무장으로 활동하면서 좀 더 서로를 알게 되었으나 정작 가깝게 된 것은 미국에서다.

필자가 1993년 3월 미국으로 이주하여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에 김진해 위원장은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도자들을 초대했다. 그날 이후로 함께 활동했고, 자주 만났다. 의례 연말이면 모두 모여 뜻있는 시간을 보냈다. 김 위원장이 우리에게 보여준 일거수일투족은 그야말로 사랑과 배려 그 자체였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어떤 조건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저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내게도 미국연맹에 지도자로 가입해서 활동할 것을 권유했다. 그의 권유로 미국 스카우트 지도자로 등록을 했고, 일선에서 대장으로 활동하지 않고 대원들의 이글 대원 진급에 꼭 필요한 두 가지 메릿 배지를 받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도록 인도했다. 그의 안내와 지도로 미국 스카우트 지도자로 계속해서 등록을 하고 활동을 했다.

김진해 위원장은 자신이 연장자라는 이유로 그 누구에게도 하대를 하거나 반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경어를 사용했고,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미국에서 만난 이후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활동할 때보다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유머를 잊지 않았다. 늘 만인에게 넉넉한 웃음을 선사하면서 여유를 갖고 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천천히 바르게 내 길을 가자는 삶의 철학을 실천하며 사셨던 분이다.

김 위원장은 타운뉴스에도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펴 주었다. 가판대에 신문이 없을 때마다 전화해서 신문을 채워 넣도록 했고, 한 달에 한 번은 빵과 음료수 등을 갖고 타운뉴스를 방문해 격려해주었다.

지난해 2월, 타운뉴스를 찾은 김 위원장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스카우트 자료와 여러 가지 물품을 내게 넘겨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를 보관하고 소장하라는 뜻인 줄은 알겠는데 난 자신이 없었다. 또 정신적으로도 그의 뒤를 이어 스카우트 정신에 따라 생활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마땅한 사람으로 지금 777대 대장으로 매우 활발하게 스카우트 활동을 하고 있는 조셉 신 대장을 추천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신 대장은 그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는 지도자로 손색이 없다. 조셉 신 대장은 김진해 위원장처럼 한국인의 정신을 스카우트 정신으로 연결해서 미국의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도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흥사단과 스카우트를 연계해서 청소년 수련에 앞장서고 있으며 대원들을 이끌고 각종 한인 행사와 스카우트 대회에 참가해오고 있다. 특히 그는 미군 특전사 출신으로 군인 정신까지 결합해서 스카우트 대원들을 육성해오고 있다. '제2의 김진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랑과 봉사 정신으로 한인 커뮤니티 발전에 앞장서고 있는 조셉 신 대장은 재미 한인 보이스카우트계의 큰 지도자로 이미 자림매김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도 두말없이 동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셉 신 대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뜻을 전달했다. 신 대장도 김 위원장의 뜻에 따라 보이 스카우트 자료와 물품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9월 하순, 김 위원장이 의식을 잃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은 후 조셉 신 대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유품을 인수하도록 했다. 그러고도 남은 일부 유품은 현재 타운뉴스가 보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공원에서 함께 걷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그와 작별을 고한다. 그날 김 위원장은 말했다. “아이들이 운전 그만 하고 우버 타고 다니라는데 난 계속할 거야. 어떻게 운전을 하지 않고 살 수가 있어. 미국에서.” 사무실 문을 열고 씩씩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별이 된 고 김진해 위원장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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