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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공사를 앞두고
11/27/23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가 확정되고 투표로 디자인을 결정하고 한 달 전부터 공사 일정 공고문이 붙었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여서 순차적으로 교체를 실시했는데 우리 동이 마지막 차례였다. 보통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하면 옆라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 아파트의 경우 옆라인과 옥상이 연결되어있지 않아서 불가능하다. 

우리 집은 14층으로 얼추 2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지하 1층이나 2층에 주차를 했을 경우에는 조금 더 늘어난다. 종종 운동을 목적으로 14층으로 걸어 올라가기도 했지만 이게 운동을 결심하고 올라갈 때와 어쩔 수 없어서 올라야 할 때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게다가 옷이나 신발이 불편하거나 짐이 있을 때, 힘들고 피곤할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운동으로 계단을 선택했을 때도 대게 5층까지는 가뿐했고 8층까지도 견딜만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숨이 차고 다리도 무거웠다. 그런데 4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계단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착공이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지막 일주일은 철저한 계획하에 하루하루 열심히 준비에 돌입했다. 쌀, 휴지, 물티슈, 우유, 음료수, 라면, 감자, 양파, 무거운 과일과 야채 등을 잔뜩 쟁였는데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꾸만 이것저것 사들였다.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오르내려야 하는 것을 생각해 오랫동안 망설이기만 했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도 큰마음먹고 구매했다. 착공 이삼일 전부터는 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에 사로잡혔고 온 집안을 뒤집어엎어 버릴 것들을 잔뜩 끄집어냈다. 

그리고 전날은 마지막까지 열심히 재활용 쓰레기를 다시 갖다 버렸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피자, 치킨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올해 마지막 배달음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어서 먹고 또 먹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던 공사 전날, 퇴근이 늦었던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서 "내일 공사 취소되었대"라고 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니 오늘 아침, 등교하는 애들까지 등 떠밀어 재활용 쓰레기를 잔뜩 내보냈는데 마음의 준비하는데만 한참이 걸렸는데 갑자기 바로 전날 밤에 이렇게 공지를 해버린다고? 

11월 17일 착공인데 16일 저녁에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공지를 달랑 붙여놓은 것이다. 긴 설명을 간단히 하자면 11월 9일에 승강기 안전검사 신청을 했는데 연말 검사 수요 폭증으로 12월 내로 검사 실행 불가 통보를 11월 15일에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철거는 잠정적으로 연기한다는 이야기인데 아니 무슨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를 이런 식으로 진행하지? 일단 당장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잠깐 안도감이 들었지만 이내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니 그럼 대체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지? 그럼 또 식료품과 생필품을 쟁이고 쓰레기를 내보내고 그 힘든 마음의 준비를 다시 해야만 하잖아? 

이 글을 쓰고 있다가 너무 답답해서 관리소에 전화했더니 방금 긴급공지를 게시판에 붙였단다. 얼른 나가서 읽어보니 당장 이틀 후부터 착공이고 안전검사 일정은 아직도 미정이란다. 화가 나서 다시 관리소에 전화를 했더니 직원은 상황 파악도 잘 안 되는 눈치라 소장님과 연결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17일 착공인데 9일에 안전검사 신청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은 맞나요?"하고 물으니 "원래는 맞는데 지금 수요가 너무 많아서 좀 늦었답니다." 하신다. 엘리베이터 공사 문제로 지금 주민 민원이 엄청 심해서 본인도 요즘 너무 힘들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니 나도 더 이상은 말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 동안 소진된 것들을 다시 채워 넣고 재활용 쓰레기도 다시 모아 내보내야겠지? 금요일 스케줄도 많은데 최대한 왔다 갔다 이동을 줄여야겠네.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차피 시작될 거 언제 시작돼도 할 수 없는 건데 갑자기 취소되고 또 갑자기 다시 한다고 그러니 괜히 속이 시끄럽다. 어차피 할 거였는데 말이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 공사를 맞이해야겠다. 혹시 알아? 공사가 끝날 무렵 훨씬 건강하고 날씬해졌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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