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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것
11/27/23  

올해도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가 정성스럽게 만든 치즈케이크를 갖다 주었다. 친구 부인이 만든 이 케이크 맛을 기억하는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차와 함께 케이크를 먹다보니 미국에서 보낸 서른 번의 추수감사절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처음 맞이한 추수감사절을 중학교 동창, 친구집에서 맞이했다. 친구의 처가 식구들, 친구의 어머니와 두 여동생 부부, 또 그들의 자녀들, 필자의 아이들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부터 칠면조 구이에 들어갔다. 이와 별도로 뒤뜰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갈비를 구워 먹으며 술도 곁들였다. 저녁이 되어서야 잘 구워진 칠면조와 으깬 감자에 그레이비를 얹어 먹었다. 말로만 듣던 미국의 전통 추수감사절을 처음으로 경험한 셈이다.

다음 해 추수감사절은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하고 그 해 미국에 이주해 온 친구 가족을 초대했다. 커다란 칠면조를 사다가 하루 종일 오븐에서 구우며 감자 요리도 만들었다. 요리책을 봐 가면서 구워 낸 칠면조라 맛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낯설기만 했던 추수감사절 요리를 직접 만들어 가며 먹다보니 비로소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도 했다.

3년째 되던 해 추수감사절부터는 미국식당에서 음식을 사다 먹었다. 칠면조뿐만 아니라 추수감사절용 음식을 패키지로 주문하고 찾아와 먹다 보니 음식을 장만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편리했다. 칠면조가 별로 내키지 않는 해에는 갈비찜이나 만두 등 한국 음식으로 추수 감사절 상을 차리기도 했다. 사람마다 집집마다 입맛이 다르니 원하는 음식을 차려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추수 감사절 상을 거쳐 간 음식들은 한국식, 중국식, 일본식, 멕시코식 등등 이민의 나라 미국답게 아주 다양하고 풍성했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거쳐 간 모든 인연과 일들을 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일들로 가득차 있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지만 정신없이 살다보면 감사한 마음을 잊게 된다. 그나마 매년 11월에 들어서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차분히 생각해 보는 편이다.

추수감사절은 일종의 연례쉼표라고 생각한다. 바쁘고 정신없는 우리의 삶을 잠깐 쉬어가면서 감사의 마음을 품어 보는 시간이다. 앞만 보고 치닫는 가파른 삶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조용히 돌아보게 만드는 고마운 장치이다.

그런데 올해는 피부에 와닿는 분위기가 예년과 다르다. 해마다 이맘때면 추수감사절 분위기가 물씬했다. 마켓이나 상점들도 절기에 맞춰 풍성하게 단장을 하고 깊은 가을 냄새를 연출해서 마음이 푸근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이르게 지난 10월 핼러윈을 지나면서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각종 언론매체들의 광고는 물론 상가나 업체들의 홍보도 다른 해보다 적극적이다. 업소들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 끝마쳤다. 크리스마스가 아직도 4주 이상 남았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용 상품을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세일을 시작했다.

극심한 불경기가 계속되다 보니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당기려는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만발한 세일 속에 미리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니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미리 닥친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고 있다. 없는 돈을 털어서 소비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또 돈이 바닥난 사람들은 크레디트 카드에 의지해 세태에 묻어가고 있다. 때 이른 크리스마스 쇼핑으로 불경기가 해소될지, 계획에 없던 과소비로 개인 재정이 타격을 입어 불경기가 심화될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다고 사는데 그리 큰 지장은 없다. 선물 이전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감사의 계절을 건너뛰고 바로 선물시즌으로 돌입하는 것은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갑을 들고 쇼핑하러 달려 나가기 전에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쉬었다 가자.

‘감사하는 것’은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감사가 없는 삶이나 생활은 공허하고 힘이 많이 든다. 지나치면 슬픔과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건강까지 해치게 된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주위의 모든 것을 둘러보고 내 자신의 위치를 재점검하면서 큰 그림 속의 자신을 돌아 볼 때 감사는 저절로 따라 온다.

추수감사절 상 앞에 모여 앉아 감사와 사랑을 나누었듯이 연말연시도 훈훈한 마음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일상에 감사하며 보내자. 오늘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지고 이루어진 모든 일에 감사하자.

해마다 정성스럽게 만든 치즈케이크를 선사하는 친구 부부와 2023 추수감사절 저녁을 함께해준 친구들과 가족에게 감사한다. 끝으로 끊임없이 성원해주시는 타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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