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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이게 최선인가?
11/20/23  

수요일 저녁 갑자기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층간소음주의 안내였는데 특히 내일이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줄여서 수능)이니 수험생들을 위해 각별히 신경 써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같은 아파트 라인에 딸의 친구 언니가 고3 수험생이란 생각이 나서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내일 수능인데 수험생은 어쩌고 있냐고 물었더니 한숨 자고 일어나서 저녁 먹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하긴... 내일이 시험인데 전날 불안에 떨며 공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보다는 오히려 잘 먹고 잘 자고 편히 쉬면서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익히 들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우리나라에서 고3 수험생은 마치 또 다른 클래스처럼 대우받는다. 고3이라는 프리패스를 손에 쥐면 어떤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되며 "고3이니깐... 수능이 코앞이니까..."와 같은 이유로 온갖 진상을 부려도 온 가족은 물론 전 국민이 "아이고 그럴 수도 있지."하고 이해해 주고 맞춰줘야만 한다. 고3 수험생이 있는 집은 수능을 앞두고 수험생뿐 아니라 온 가족이 철저히 건강관리를 하며 몸을 사리고 마치 이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처럼 비장해진다. 

그리고 대망의 수능 날이 되면 온 나라가 초비상 사태가 된다. 수험생의 시험장 정시 도착을 위해 교통 트래픽 최소화로 초중고 학생들은 등하교 시간을 조정하거나 휴교를 하고 경찰차, 소방차까지 동원되어 수험생들을 실어 나른다. 영어 듣기 평가가 시행되는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연기되고 시험장 인근을 지나는 철도에서는 열차도 달리지 못한다. 남의 집 자식 대학 입시 시험 본다는데 이렇게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는 이 시험이 일 년에 단 한번 바로 단판 승부이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에서는 수능의 영향력을 줄여보겠다고 수능 등급제, 특별 전형, 수시 전형 등 다양한 제도들을 들여봤지만 어찌 되었든 일 년에 딱 한번 치러지는 시험이고 과장 좀 보태서 이 시험을 위해 지난 12년을 달려왔으니 난리부르스를 떨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미국도 대학입시를 위한 SAT, ACT 등의 시험이 있다. 이 시험의 출제와 관리는 국가기관이 아닌 칼리지보드라는 비영리 사설기관이 하고 규정에 정해진 횟수 내에서 비용만 지불하면 몇 번이고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시험을 말아먹었다면 다음에 다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보니 1년에 딱 한번 정해진 날에 응시하는 수능에 비해 심적인 부담도 훨씬 덜하다. 그렇다 보니 이 시험을 본다고 누구 하나 딱히 신경 쓰는 경우도 없다. 오직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과 그 학생의 부모 말고는 아무도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이 시험을 보고 있을 때 교실 밖 잔디에서 정원사가 요란하게 수목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 그러려니 했다. 

미국 또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미국 역시 고학력, 고소득 부모를 가진 수험생들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도 사실이고 사교육, 입시 컨설팅, 입시 비리와 같은 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매번 수능 시즌이 되면 드는 생각이지만 대입 시험 제도만큼은 미국처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칼럼에서 거론한 적이 있지만 일 년에 단 한 차례, 하루 만에 치러지는 수능으로 인하여 수험생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불필요한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능은 최악의 시험이자 입시 제도이며 우리나라 10대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분명하다. 1년에 딱 한 번만 정해진 날 시험을 봐야 하고 이 시험이 대학입시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 어마어마한 부담과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슨 오징어게임도 아니고 까짓 시험 하나에 인생이 걸려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수능 결과가 안 좋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게 된다 한들 그게 내 인생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도 아닌데 이렇게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어대니 멘탈을 부여잡고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안 가 우리 아이들도 이런 상황을 맞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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