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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 이야기
11/13/23  

오늘 아침 남편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말했다. "내가 방금 뭘 찾았는 줄 알아?""뭔데?"남편이 씩 웃으며 내민 것은 바로 신분증이었다. 작년 이맘때 회사에서 사본을 만든 후 없어졌다고 난리 난리 생난리를 피웠던 그 신분증이었다. 회사 복사기에서 사용 후 기억이 없다며 그 큰 복사기를 들어내서 샅샅이 찾아도 안 보이자 같은 층에 근무하는 직원 3-4백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회사 총무, 보안실, 분실물센터, 청소관리실까지 연락하며 한바탕 소동을 피웠지만 찾지 못해 결국 새로 발급을 받아야만 했던 바로 그 신분증. 그런데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꺼내 입은 재킷 주머니에서 너무나 얄밉고 태연하게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결코 낯설게 들리지가 않는다. 나에게도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평소 자주 사용하던 신용카드를 주말 러닝 다녀온 이후로 찾을 수가 없어서 거의 한 달가량을 가방, 서랍, 옷, 침대 밑까지 찾아보고는 결국 분실 신고하고 재발급 받았었다. 그리고 잊고 지냈는데 최근 윈드브레이커를 꺼내 입다가 주머니에서 발견한 것이다. 분명히 그때 주머니들도 꼼꼼하게 살핀다고 살폈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용 후 바로 제 자리를 찾아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서두른다고 급하게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못 찾고 난리를 피운 게 한두 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가 나도 모르게 미끄러져 떨어진 경험은 휴대폰 사용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나만해도 아찔한 경험을 꽤 많이 했는데 10년 전쯤인가 보다. 고가의 아이폰을 구매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라스베이거스 박람회에 갔다가 허둥지둥 택시에서 내리고 나니 휴대폰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사색이 되어 동행한 친구와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고 친구가 찻길에 떨어져 있던 내 휴대폰을 들어 올렸을 때는 환희가, 그 휴대폰 액정이 산산이 부서져 있는 것을 보면서는 좌절이 밀려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신없이 택시에서 내릴 때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미끄러져 찻길로 떨어졌고 택시가 곧바로 내 폰을 밟고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련만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내 휴대폰은 주머니에서 미끄러졌다. 

이렇게 주머니와 얽힌 진땀 나는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어쩐지 나는 바지나 재킷에 주머니가 없으면 이상하게 불안하다. 주머니에 손 넣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주머니를 많이 활용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주머니가 없는 옷은 뭔가 어색하고 온전치 않은 기분이 든다. 새 옷을 샀을 때 주머니에 양손을 넣어보고 그 깊이가 적당하고 느낌이 부드럽고 편안하면 '내 옷이다'싶은 느낌이 온다. 언젠가 급하게 새 옷을 입고 나가느라 주머니 입구에 시침질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외출했는데 어찌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싶던지 하루 종일 다른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고작 주머니 주제에......

살아온 세월이 깊어져서인가 그 작은 주머니 속에서 펼쳐지고 시작되는 이야기들도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주머니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은 기껏 동전(그나마도 신용카드를 많이 쓰고부터는 동전도 안 나옴), 아주 가끔씩 꼬깃꼬깃한 지폐, '언제 여길 갔었지?' 가물가물한 기억처럼 희미해진 영수증들이 전부지만 그래도 어쩌다가 손에 잡히는 주머니 속 '그것'때문에 설레었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어릴 적 오랜만에 집에 놀러 오신 손님들이 아무리 내가 예의상 괜찮다며 도리질을 해도 주머니에 지폐를 찔러 넣어주시면 너무 좋아 입꼬리가 올라갔던 기억, 남편과 데이트할 때 손 시리다며 멀쩡한 내 주머니 놔두고 남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뜨거운 그의 온기에 마음이 설렜던 기억, 큰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주머니 속에 조약돌, 나뭇잎을 잔뜩 넣고 와서는 너무 예뻐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다는데 그게 너무 사랑스러웠던 기억...... 

남편 덕분에 주머니 속 추억들을 꺼내보며 미소 지었던 오늘, 입고 있는 트레이닝팬츠 주머니에 두 손을 넣어보았다. 주머니는 간신히 주먹진 손이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충분히 아늑하고 포근했다. 

지금 여러분의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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