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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불쑥 찾아온다
11/13/23  

2년 전 회사 앞뜰에 빨간 장미 두 그루와 핑크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일 년 내내 장미를 즐겼다. 누군가가 뜰을 둘러보면서 흰 장미를 심어 보라고 했다. 마음먹고 있던 차에 지난주에 Low's에 간 김에 흰 장미 두 그루를 사다 심었다. 꽃이 많이 달린 장미였으나 옮겨 심었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과연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장미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평소보다 일찍 회사로 갔다. 차에서 내려 게이트를 열려고 하는데 오른쪽으로부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흑인 청년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간밤에 그곳에서 자고 일어난 모양이다. 인상이 그리 좋지 않다. 험상궂게 생겼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으나 태연하게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선글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참 멋지다. 그 선글라스 라이방(Ray-Ban)이지." 그러자 청년이 말했다. "아냐, 이름 없는 거야." 그러면서 선글라스를 벗어 내게 직접 확인해 보라며 건네준다. 힐끔 그를 쳐다보니 양 눈썹 아래, 눈과 눈 사이, 콧등이 시작하는 지점 바로 위에 삼각형 모양의 검은색 문신이 보인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선글라스를 받아 한 번 들여다보고 다시 건네주면서 말했다. "너랑 참 잘 어울린다." 청년은 환하게 웃었다.

게이트를 열고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뜰로 나왔다. 청년은 그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신경이 쓰였으나 짐짓 별 관심 없다는 듯이 화단으로 들어갔다. 어제 몽우리 몇 개 있었던 붓꽃이 활짝 피어 반겨준다. 그리고 어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하얀 장미꽃들이 고개를 바짝 치켜세우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여름부터 피기 시작한 국화는 반은 누렇게 말라 비틀어졌고, 뒤늦게 핀 국화가 노란 얼굴로 방긋방긋 거린다. 물조리개에 물을 받아다가 꽃들에게 뿌려 주기 시작했다.

물을 주고 있는데 그 청년이 내게로 다가왔다. 잔뜩 긴장하고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가 웃으며 무엇인가-검은색의 물건-를 불쑥 내밀면서 받으라는 시늉을 한다. 얼떨결에 받고 보니 볼펜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왜 내게 이걸 주냐고 물으니 주고 싶단다. "야 고맙다." "네 이름이 뭐냐?" 청년이 말했다. "내 이름은 엔젤이야."

"엔젤? 하늘에서 온 천사?" 그가 말했다. "맞아 난 엔젤이야." "야 너처럼 선글라스 낀 천사는 처음 본다." 그가 파안대소하면서 말했다. "바이! 멋진 하루 보내!"

내가 돌아서는 엔젤을 잡았다. "엔젤, 우리 그냥 헤어질 수는 없잖냐? 기념 사진찍자."

엔젤은 자꾸 안경을 눈 아래로 내려서 찍으려고 했다. 왜 안경을 내리려고 하냐고 물으니 자기 코 위의 문신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경을 써도 보인다고 하자 그래도 안경을 내리고 찍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럼 안경 쓰고도 찍고 벗고도 찍자고 했다. 문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참 설명하는데 내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천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인상이 좀 험한 천사.

엔젤이 떠나고 뜰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 여인이 유모차를 끌고 아기를 안은 채 지나가고 있었다. 무심코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그 여인은 내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자기에게로 오라고 했다. 경계의 마음을 늦추지 않고 왜 나를 부르냐고 눈짓과 고갯짓으로 물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메모지를 가리키며 들여다 볼 것을 요구했다. 스페니쉬로 중얼중얼하면서.

잠깐 망설였다. 모른 척 돌아설까 가서 메모지를 들여다 볼 것인가. 어쩌면 이 여인도 천사일지 몰라. 그녀가 왜 빨리 안 오냐고 눈에 힘을 주면서 쳐다보고 있다. 메모지를 들여다보니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가 묻는 것이었다. 전화기에서 주소를 찾아보니 바로 아래 길에서 우회전 하면 되는 거리였다. 그러나 그 건물은 길가에 있지 않고 길에서 좀 들어가야 했다.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아기를 안고 유모차에 짐을 가득 싣고 헤매 다닐까 걱정이 되었다. 길가의 건물 앞까지 함께 가서 그 건물 뒤의 건물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고 돌아섰다.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이 말했다. “천사는 가끔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곤 한다. 설사 천사가 온 걸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천사는 전과 달라진 우리를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살며시 떠나간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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