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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투정
11/06/23  

가정주부로 사는 삶에는 여러 가지 희로애락과 굴곡이 있는데 내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니 뭐니 해도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다. 매일같이 "오늘 뭐 먹지?" 고민하는 일은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이며 나름 생각해서 준비한 메뉴가 환영받지 못하면 출품한 작품을 거부당한 아티스트처럼 낙심하게 된다. 하물며 우리 집 고양이들도 입맛이 뚜렷해서 자기네가 좋아하지 않는 사료는 입에도 대지 않으려고 하니 내 어찌 모든 식구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그런 내가 요즘 매일 저녁 기본 2번, 심할 때는 4번씩 저녁상을 차리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식구들의 귀가 시간이 모두 달라서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저녁 6시까지 학원에 가야 하는 셋째가 5시 30분쯤 일찌감치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저녁 6시 넘어서 귀가하는 막내를 위해 저녁을 차리고 그 다음은 8시 무렵 귀가하는 둘째가 저녁을 먹는다. 이 사이에 남편의 귀가 시간이 맞으면 누군가와 같이 식사를 하고 아니면 한번 더 저녁을 차려야 한다.

물론 뭐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 단백질, 탄수화물과 야채 밸런스를 생각해서 메뉴를 짜긴 하지만 대단치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반찬을 구매하기도 하고 밀키트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히 차린다고 해도 한 끼에 몇 번씩 상을 차리는 일은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맛있게 잘 먹어주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에이 나 그거 별룬데? 다른 건 없어?"와 같은 반응을 보일 때면 정말 기운이 쭉 빠진다. 

어제저녁에도 딸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이날 저녁도 세 번째 상차림이었고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이겠다고 고기도 새로 구워 주었다. 반찬으로 소고기와 닭갈비가 올라왔는데 딸이 밥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소고기는 너무 질겨질까 봐 살짝 덜 익혔고 닭갈비에 오도독뼈가 좀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 나 그냥 김 주면 안 돼?" 그러는데"어우 그냥 좀 먹지…... 내가 식모냐? 네가 갖다 먹어!" 쏘아붙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인정한다. 엄마답지 못했다. 웃으면서 김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망정 '식모' 발언까지는 하지 않았어야 했다. 너무 옹졸했다. 실제로 딸이 나를 정말 식모 취급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식모처럼 생각한 것은 나 자신일 뿐. 하지만 저녁상을 차릴 때부터 이미 나는 지쳐있었던 것 같다. 아니 단순히 그날 그 저녁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녀 중 처음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딸 때문에 지난 몇 주 마음이 힘들었던 까닭이었을 거다. 

"너도 너 같은 딸 낳아 길러봐라." 중1 때였나 보다. 엄마와 싸우고 뒤돌아 내 방으로 들어가는데 엄마의 그 날카로운 외침이 날아와 내 가슴에 꽂혔다. 이것이 결코 축복은 아니었다는 것을 내 딸을 키우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중1 딸을 키우며 힘들 때마다 이따금씩 엄마의 외침이 들려온다. 하......!

어제도 딸의 반찬투정에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엄마의 밥상을 떠올렸다. 엄마의 밥상에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빠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내게 엄마가 자식을 위해 밥을 차리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고 그래서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까탈스럽게 꼬투리를 잡고 투정을 부렸다. 오늘은 너무 짠데? 너무 매워서 못 먹겠어. 지난번 그 맛이 아니야. 오래된 거 아니야? 나 더는 못 먹겠어. 배불러. 조금만 줘.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내뱉었던 모든 말들이 지금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칼럼을 쓰고 있는데 3학년 막내가 뒤로 지나가다 말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더니 "반찬투정? 우리랑 관련 있는 건가? 그럼 당연히 주인공은 나겠지?" 한다. 그래, 이 녀석아! 제발 그냥 좀 주는 대로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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