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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하늘 파란 하늘
11/06/23  

벨리뷰에서 북상하다가 로즈크랜스를 만나 우회전해서 동쪽 방향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아침 걷기를 하기 위해 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침 태양이 솟아오르면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붉은 기운은 점차 사방으로 퍼져 나가 구름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려 구경하고 갈까 하다가 공원에 도착해서 여유를 갖고 감상하기로 했다.

공원에 도착해보니 붉은 빛이 엷게 감돌고 있을 뿐 하늘은 파랗게 바뀌어 있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한 순간이듯이 동트는 하늘의 그 아름다움도 한 순간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매일 아침 만나는 하늘도 매일 매일 다른 하늘이다.

공원을 걷는 도중에 스마트 폰은 몇 해 전에 먼 길 떠난 친구의 기일이라고 알려준다. 오는 길에 만난 예쁜 하늘도 친구가 내게 보내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친구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짜증내는 법이 없었다.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 착한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당해 우리들 곁을 떠났다.

친구와 가끔 마운틴 발디와 산골고니오 산기슭을 함께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었다. 두 곳 모두 입구에서부터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레일이다. 우리는 콸콸콸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걷기를 좋아했다.

마운틴 발디의 ‘시다 그렌 캠프사이트’까지 다녀 온 날은 눈이 펑펑 쏟아졌었다. 눈을 맞으며 라면을 끓였고, 라면을 먹으며 눈을 맞았다. 그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산골고니오에서는 내기를 했었다. 친구가 물속에 1분 이상 있기 힘들 거라면서 3분 이상 있으면 자기가 5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차디찬 물에 발 넣고 있기 힘들었지만 난 그 5달러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 산골고니오 계곡 물은 산타아나강으로 이어져 태평양으로 흘러간다. 트레일 입구부터 물소리가 반겨주며, 트레일 전 구간이 물길 따라 이어져 우리는 ‘워터라인 트레일’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산타아나 강의 발원지, 즉 물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점심 먹고 내려 왔다. 일 년 열두 달 꽃이 피어 있고 특히 봄철에는 꽃밭 속을 거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꽃이 만발하다.

산골고니오는 2015년 6월에 난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Lake Fire’로 명명된 산불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3만 에이커가 넘는 삼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한 동안 입산이 금지되어 찾지 못하다가 입산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와 찾았었다.

예전의 우거진 산림이 다 타버리고, 타다 만 까만 나무 등걸을 보면서 친구는 ‘죽은 것들의 기운이 산 전체를 덮고 있다’며 매우 가슴 아파했다. 그러면서도 ‘불에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꼿꼿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파란 싹과 예쁘게 핀 꽃들을 보면서 죽음을 뚫고 일어선 자들의 함성이 들린다.’고 했다. ‘골짜기를 가득 채운 물소리, 새소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린다.’고도 했다. 이 모든 소리가 메시아를 찬미하는 장엄한 연주라면서 죽음의 사도들은 고개 숙이고 엎드려 있고, ‘모든 것들이 타버린 그 속에 평화가 있지 않은가?’ 물었다.

산불에 타버리고 검은색이 지배하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죽음의 기운’과 잿더미 속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생명의 소리“를 보고 들었다. 죽음과 생명은 서로 상반되는 말이다. 즉, 죽음은 소멸이요, 없어지는 것이고, 생명은 잉태요, 존재하는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죽음과 생명을 검게 타버린 산야에서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함께 산행을 했던 친구는 세상을 떠났으나 그와 함께 한 산행은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는 추억 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죽음이 소멸이라 하지만 그와 함께한 추억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 안에 살아 있다. 잿더미로 변하기 전의 울창한 산림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듯이.

아름다운 시간, 행복한 시간 속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그러나 아름답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 수는 있다.

공원을 떠나면서 붉은 기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맑고 투명한 파란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본다. 불과 한 시간 전의 붉게 물든 하늘과 같은 하늘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지만 다른 두 하늘이 같은 하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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