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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 없다
10/30/23  

요즈음 대한민국은 지방의 한 도시시장을 거쳐, 도지사를 지낸 후에 대통령에 출마해 0.7%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낙선한 분의 재판으로 시끄럽다. 그는 대선에 실패한 뒤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거대 야당 대표가 되었다. 그가 재판에 회부된 것은 시장, 도지사 재임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부정·부패와 연루된 불법 혐의 때문이다. 그 많은 혐의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입에 올리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그 중 가장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그래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분이 도지사로 재임할 때, 도지사 공관 행사 등의 명목으로 대량의 샌드위치와 과일 등을 종류별로 구입해서 법인카드로 결재한 후 도지사 자택으로 정기적으로 배달시켰다고 한다. 한 번에 적게는 10인분, 많게는 30인분 정도가 배달됐다. 즉 도청 경비로 구입해 집으로 배달시킨 샌드위치와 과일 등을 도지사와 그 가족들이 먹었다는 얘기이다.

당시 7급 공무원이었던 공익신고자는 '그가 지사로 있는 동안 내내 이런 일을 해왔고, 뿐만 아니라 서울의 한 미용실에 가서 샴푸 사오는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지사 부인 수행팀이 관련 회계 규정을 피하기 위해 심부름 하는 직원의 개인카드로 먼저 결제를 한 후에 이를 취소하고 법인카드로 다시 결제하는 등 편법을 사용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렇게 선 결제 후 취소하고, 다시 결제한 까닭은 법인카드 결제 시점을 도지사가 회식에 사용한 것처럼 만들어서 감사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술책이라고 말한다. 한우 고기 값의 경우 법인카드 사용 규정에 맞추기 위해 정육점이 아닌 정육식당에서 재 결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으며, 12만원 한도 결제와 관련해서는 1인 3만원까지 식사비로 사용할 수 있고, 코로나19 사태로 모임 인원이 4명으로 제한된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이와 흡사한 일이 스웨덴에서도 있었다. 1995년 잉바르 칼손 스웨덴 총리가 사임을 예고하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모나 잉에보리 살린(Mona Ingeborg Sahlin) 부총리를 지명했다. 그런데 총리직 계승을 반년 앞둔 1995년 10월, 살린 부총리가 정부 신용카드(법인 카드)로 차량 임대비를 지불하고, 초콜릿과 아기 기저귀 등 개인 물품을 산 사실이 드러났다. 살린이 사적 용도로 법인 카드를 쓴 비용은 약 5만 크로나(약640만원)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분노했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살린은 법인 카드로 쓴 개인 비용을 모두 재무부에 상환했고, 1만 5,000 크로나(약200만원)의 벌금도 냈다. 이 사건은 살린이 구매한 초콜릿 브랜드 이름을 따서 ‘토블론 어페어(Toblerone Affair)’라고 불린다. 살린은 “자기 비용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서 총리가 될 수 있겠냐”고 하면서 부총리 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이후 살린은 야당인 사민당 당수가 되어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6년 5월, 자신이 고용한 경호원의 월급 액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확인서를 써 준 게 드러났다. 경호원이 은행에서 아파트 담보 대출을 쉽게 받도록 도우려 한 것이었지만, 거짓은 거짓이었다. 그는 당시 맡았던 폭력적 극단주의 해소를 위한 국가조정관 직책에서 즉각 사임했다. 2017년에는 저술과 강의에서 수익 15만1,000여 크로나(약2,000만원)를 소득신고하지 않아 탈세 혐의로 기소됐다. 2만3000 크로나(약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정계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웨덴은 1776년에 세계 최초로 모든 정부 기록 문서에 대한 접근을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장관‧의원‧판사 등 고위직 인사의 세금신고서는 공공 문서이며, 국민은 지출 경비 내역을 요구할 수 있다. 스웨덴 국민은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세금으로 특권을 누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도 바로 뉴스거리가 된다.

스웨덴의 모나 샬린 부총리는 아기 기저귀와 초콜렛을 자신이 직접 법인 카드로 구입했고, 한국의 도지사의 경우는 지사 본인이 직접 법인 카드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직원들이 법인 카드를 사용해서 구입했다. 상황이 다르다.

설마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는 큰 뜻을 품은 분이 까짓 샌드위치나 과일 등을 제 돈 들이지 않고 도청 경비로 먹겠다고 그랬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총무과 소속 담당자가 도지사 부부에게 잘 보이려고 시키지 않은 일을 했고, 해당 직원에게 몰지각한 심부름을 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도지사 부부가 매일 아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그 샌드위치를 어떤 카드로 사왔는가 확인했을 리도 없지 않은가. 도지사와 그 가족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에 출마했던 정치 지도자가 그런 쪼잔한 일을 했을 리 없다’는 우리들의 생각이 하루 빨리 법정에서 사실로 밝혀지길 기대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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