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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보기나 했어?
10/23/23  

지난 주말 남편 회사 행사가 있어서 충남 서산 간척지에 다녀왔다. 높고 푸른 하늘, 따뜻한 햇살과 그늘 밑 선선한 바람이 마냥 좋은 10월이었다. 사람이 메우고 자연이 일군 땅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꿈과 도전, 그리고 미래를 볼 수 있었고 그 느낌을 나누어 볼까 한다. 

포브스 선정 세계 재계 순위 9위까지 올랐던 왕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으로 중학교도 나오지 못한 가출 소년에서 1930년대 쌀 배달을 시작으로 자동차 정비업, 건설업 등을 거치며 세계적인 거대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수많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해 보기나 했어?", "나는 젊을 때부터 새벽 일찍 일어난다. 그날 할 일에 대한 기대와 흥분 때문에 마음이 설레어 늦도록 자리에 누워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날이 왔을 때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고 힘차게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등이 있다. 

태생이 도전 그 자체였던 정 회장의 모든 역작이 의미가 있었지만 서산 간척사업은 현대건설 특유의 기업 정신이 녹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를 메우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서울 여의도의 33배에 달하는 4700만 평의 넓은 땅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간척지 한 농장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한다. 정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50마리였던 소는 3500마리가 넘었고 어느 날 갑자기 소 오백 마리를 외부로 보내겠다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그곳은 바로 북한이었다. 1998년 6월 통일소라고 명명된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고 같은 해 2차로 501마리를 가져간다. 이때 마침내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를 얻어내기도 한다. 

정 회장이 실제로 서산 간척 사업을 할 때 머물렀던 기념관도 방문했는데 이곳은 정 회장이 서산을 방문할 때마다 기거했던 곳으로 정 회장의 검소했던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서재, 침실, 욕실, 부엌, 입던 잠옷과 작업복, 운동화까지 그 당시 지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구멍 난 양말을 기워서 신고 다니는 부자였다더니 과연 소문대로였다. 그가 사용했다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사용하던 것들과 다르지 않아서 신기했고 또 놀라웠다. 

아내인 변중석 여사 역시 생전 큰 욕심 없이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는데 "검소한 그림자 내조"로 유명하다. "재봉틀 하나와 아끼던 장독대가 내 재산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집에서 언제나 몸빼 바지 차림이어서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일하는 아주머니로 착각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변중석 여사의 방은 부엌 옆, 영락없는 식모의 방이었다. 검소한 정 회장의 방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수준이었다면 재벌가 안주인의 방은 침대도 없는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의 방 같아서 뭔가 마음이 숙연해질 정도였다. 현대가에는 "채소는 시장에서 사라, 배추 한 포기 값도 꼼꼼히 적어라, 언제나 겸손하라,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마라" 등의 내용을 담은 며느리 7 계명이 있다더니 괜히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정주영 회장의 꿈과 도전이 담긴 서산 간척지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붉게 물든 하늘을 수놓은 철새 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이렇게 끊임없이 핑계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작과 도전이 두렵기만 한 내게 이 땅과 저 하늘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봐, 해 보기나 했어?" 실패라는 개념을 버리고 시련을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면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정말로 실패는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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