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10/02/23  

가끔, 아주 가끔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가깝게 지내던 친지나 친구, 혹은 이웃이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안에 우환이 생긴 것도 아닌데 이런 기분에 휩싸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계절적인 요인인가? 아니면 나이 때문일까?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거리며 며칠을 보냈다.

토요일 아침, 함께 걷던 친구가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많이 힘들다면서. 항상 밝고 환하게 웃으며 재미나게 살기에 문제가 없는 줄 알았던 친구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똑 같은 기분을 친구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날, 멀리 떠나는 딸을, 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짐을 내려주고 떠나려는 내 등 뒤에서 딸이 말했다. “아빠 재밌게 놀아.” 내가 노래하듯이 아이들에게 하던 말이다. 외출할 때마다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했다.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도 ‘재미있게 놀다오라’고 했다. 내가 하던 말을 딸이 내게 돌려주는 것 아닌가.

딸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는데 한국의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수족 마비가 서서히 진행되고 뇌에도 문제가 있어 15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변해가고 있다’면서 ‘어떻게 적응을 해야 하냐’고 묻고 있었다. ‘이제는 말도 잘 안 되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면서 ‘그래도 살아가야 하지 않냐’고도 물었다. 답을 구하기 위해 묻는 질문은 아니리라. 그리고 잠시 후에 또 문자가 왔다. ‘어째든 살아 가야한다’면서 ‘우울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항상 기쁘게 사는 네가 멋지다’면서 끝을 맺고 있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는 걸 힘들어 하면서 시원한 답은커녕 원인조차 찾지 못하고 몸도 마음도 아파하며 힘들게 살고 있는 내게 멋지다니......

졸업하고 7~8년 뒤에 친구가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며 나를 불렀다. 당시 나는 이미 두 아이의 아빠였다. 친구는 자기 남편이 될 사람이 괜찮은가 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셋이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아주 멋진 분이었다.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인품까지 훌륭한 분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무조건 결혼하라고 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음은 물론 사진도 찍어 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친구는 아들, 딸을 낳았고, 아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법조인으로 활동 중이고, 딸은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는 몹쓸 병에 걸려 삐쩍 마른 몰골로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며 살고 있다. 15년 전에 친구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며 서서히 나빠지는 병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혼자 차를 타고 다녔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는 혼자서 외출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모임에도 남편과 함께 나왔다. 언젠가 한국에 나갔을 때 친구가 불편할까봐 연락하지 않고 그냥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친구는 자기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갔다며 무척 섭섭해 했다. 심지어 자기가 병들었다고 무시 하냐며 화를 냈다. 그 후로는 한국에 가면 꼭 연락을 한다. 언제나 친구는 남편과 함께 움직인다.
우리는 만나면 술도 한 잔 한다. 친구는 술을 안 마시지만 남편이 술을 잘 한다. 5~6년 전부터 우리는 친구의 집 근처에 있는 한 식당을 정해 놓고 점심 때 만나 낮술을 즐긴다. 해마다 몸이 쇠약해지고 더 말라가고 있는 친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그런 부인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있는 남편에게 감사한다. 정말 훌륭한 분이다.

친구에게 답을 했다. ‘나도 많이 아프고 힘들다. 몸도 마음도. 그러나 매일 걷고 좋은 친구들과 식사하고 수다 떨면서 살고 있다. 친구야! 누구나 다 비슷비슷하게 아프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게 힘들어 하며 살고 있더라.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또 다른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산다. 참으로 세상은 공평하다.’ 바로 또 답이 왔다. '고마워. 사는 날까지 새기고 살게.' 친구와 얘기하면서 나도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사는 게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침에 함께 걷는 친구와 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산에서 하루 자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면 우리들 마음도 편안해지리라.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