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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인생
09/25/23  

마켓 앞 타운뉴스 가판대에 신문이 없다는 독자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 신문을 채워 넣고 돌아서는데 누군가가 부른다. 자동차 안에서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지막 만난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5~6년은 족히 지난 듯하다. 그동안 서로 연락조차 못하고 살았다. 친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가 타고 있는 자동차도 같이 빛을 내고 있었다.

친구는 은퇴하고 몇 년 쉬다가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가량 되었다고 했다. ‘직장에 다니니까 아내와 다툴 일도 없어지고 오히려 더 잘 지내게 되었다며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60대 말에 취직이라니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한국의 은퇴한 60대는 일자리는커녕 소일거리도 없다. 주로 등산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65세가 넘으면 지하철 탑승이 무료라 교통비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멀리 나가 점심 한 그릇 사먹고 돌아오면 그럭저럭 하루해가 저문다. 이렇게 무료로 지하철 타고 다니는 노인들을 ‘지공대사’라고 부른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은퇴자들 가운데 건강한 사람들은 아파트 혹은 빌딩 경비를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물건 배달하는 일을 한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번다고 한다. 그러나 지원자는 많고 일자리가 많지 않으니 일 잡는 것도 하늘에 별 따기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대학 입학할 때까지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졸업 후에는 취업난에 허덕이고 직장 생활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고, 은퇴 후, 일자리 찾는 것까지 경쟁해야 하니 인생살이가 고달프다.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사람 사는 모양새는 다 거기서 거기다. 돈 잘 벌고 멋지게 잘 살았든, 후줄근하고 고달프게 살았든, 나이 먹으면 허물어지는 육체와 함께 노후가 찾아온다. 행여나 준비 없이 맞이하는 노후는 힘들고 서러워진다.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면 모두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만큼은 있어야겠지만 이 또한 저마다 기준이 다르다. 은퇴 전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정도라 해두자. 다행히 노후 대책이 충분히 잘 되어 있다 해도 건강이 무너지면 또 큰일이다. 노후를 대비한다고 젊었을 때 건강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가 먹고살 만해지면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어도 건강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경제적 기반도 있고 건강도 양호하게 관리했다고 하자. 그런데 노후에 할 일이 없으면 그것도 문제다. 옛날에는 예순만 되면 뒷방 노인 취급을 받았는데 요즈음은 일흔 먹은 사람도 노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평균 기대 수명은 80을 넘어선지 오래다. 아니 이제 100세 시대이다. 60대에 은퇴를 한다 해도 그 후에 살아가야 할 날이 20년에서 40년이다. 지금 젊은 세대라면 30년에서 50년이 될 수도 있다. 은퇴를 하고 또 한 생(生)을 살아야 할 판이다.

진정한 노후 대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며 내린 노후 대책의 핵심은 돈도 건강도, 소일거리도 아니다. 제 1의 인생을 은퇴하고 맞이해야 할 제 2의 인생에 대한 삶의 설계가 진정한 노후 대책이다. 그 설계는 빨리 할수록 좋다. 지금의 인생을 열심히 살면서 시작할 수 있다.

무언가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당장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수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필요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악기 연주, 서예, 그림, 댄스, 노래 등 각종 커뮤니티 센터나 교회 등에서 하는 강좌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내게 맞는 것을 골라 즐기면 된다. 취미생활을 즐기다 보면 건강은 저절로 따라온다. 또, 취미 활동도 오래하면 실력이 쌓이게 되고, 실력이 쌓여서 전문 기술이 되면 그것으로 제 2의 인생을 지원할 수 있는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금상첨화 아닌가.

다음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취미 생활을 함께 해도 좋고, 함께 걸어도 좋지만 그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살면서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이나 기분 등을 혼자 속 끓이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이야기 하다 보면 저절로 해소되기도 한다. 내 속을 털어 놓아도 괜찮을 사람, 지금부터 눈 크게 뜨고 찾아보자.

끝으로 하루에 한 번은 밖으로 나가 걸어야 한다. 실내에서 걷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걷는다. 걷는 곳이 산이나 공원이 아니라도 무방하다. 집 뜰이어도 좋다. 그리고 목표 지점을 정해놓고 걷지 않아도 좋다. 제자리걸음이면 어떠냐. 그 어디에서든 가슴 활짝 피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걷는다.

‘그렇게 좋을 수 없다’며 제 2의 인생을 잘 살고 있는 친구와 헤어져 돌아서면서 나의 제 2의 인생은 어떤가 생각해 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것들로 넘쳐난다. 독자 여러분들 모두의 찬란한 제 2의 인생에 행복이 넘쳐나기를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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