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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산림축제
08/28/23  

지난 8월 19일(토) ‘2023 산림축제(Forest Festival)’가(이) 열렸다. 산골고니오 야생 협회(San Gorgonio Wildness Association, SGWA)가 주최하는 산림축제는 해마다 8월 세 번째 토요일에 Barton Flats Visitor Center에서 열린다. 2015년 산불로 일시 중단되었으나 재개됐다가 코로나 19로 또 다시 중단됐고, 작년에 다시 재개됐으나 필자는 참석하지 못했다. 올해 개최 연락을 받고 갈까 말까 망설였다. 집에서 축제장까지 편도 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림축제 개최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테디 보스톤(Teddi Boston)이 보고 싶어 결국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테디는 1976년 패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단독으로 종단한 최초의 여성으로 당시 50세의 가정주부였다. 그리고 그는 나를 SGWA로 인도한 분이다.

2003년, San Gorgonio 사우즈 포크 트레일 하산 길에 테디를 처음 만났다. 테디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레인저 복장을 한 키가 크지 않고 덩치도 크지 않은 여성이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테디는 ‘샌 골고니오는 한국인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기 때문에 한국인 레인저가 필요하다’며 내게 SGWA에서 봉사할 것을 권했다.

SGWA는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샌 골고니오 산의 자연과 생태계를 보호하고 등산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레인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 부족으로 정규 레인저는 샌 골고니오 지역에 배치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모든 레인저 업무는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다. 자원봉사 레인저는 매년 5월에 개최되는 훈련을 받고 각 지역으로 배치돼 순찰, 등산객 안내, 산길과 이정표의 정비나 보수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한 해에 70여 명이 훈련을 받지만 실제로 자원봉사 레인저로 일하는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두 번째 만났을 때 테디는 다음 주에 레인저 교육이 있다며 참석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의 설득으로 SGWA 멤버가 되었고, 2015년 산불이 나기 전까지 10여 년 가까이 주말에 레인저로 봉사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14일 테디와 인터뷰를 타운뉴스 921호(2012.10.22.)에 특집 기사로 실은 적이 있다. 인터뷰 당시 그의 나이 85세였다.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친구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산림축제에 도착하자마자 스텝들에게 테디가 어디 있는지 혹시 아냐고 물었다. 그들은 테디가 운전을 하지 않으니까 페스티벌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고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96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씩씩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으나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테디를 찾았고, 그는 그들과 인사하느라고 바빴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정정한 테디를 보니 마음이 좋았다. 우리는 그와 헤어져 축제장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고 자기가 자른 나무에 글자와 그림을 새기는 부스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이 자른 통나무 조각에 자기가 좋아하는 문양을 새겨 각자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사금을 채취하는 부스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이 부스는 매년 인기가 많다. 이외에도 샌 골고니오에 사는 곤충들을 잔뜩 모아 놓은 부스, 크고 작은 돌에 예쁜 그림을 그리고 에나멜을 입힌 돌도 구입할 수 있는 부스, 샌 골고니오에 사는 예쁜 꽃과 나비들을 모아 놓은 부스 등 산림과 관련한 체험을 할 수 있는 15개의 부스들이 설치돼 있었다.

각 부스에서는 체험을 마친 참가자들에게 체험 확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SGWA는 모든 부스의 도장을 다 받은 사람에게는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 가질 수 있도록 해 많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산림 체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다만 예전에는 마구간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말들을 몇 마리 두어 아이들이 평소에 보기 힘든 말과 친숙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올해는 마구간을 만들지 않아 조금 섭섭했다. 또, 한국인은 친구와 나, 둘뿐이었던 것도 아쉬웠다.

축제에 노래가 빠질 수는 없는 법. 산림 체험 행사를 마칠 무렵, 축제장 한편에서 레인저 한 사람이 피리를 불고 기타 연주를 시작하며 축제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기타리스트의 반주에 맞추어 여성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이어 장발의 기타리스트가 올라와 연주를 선보이자 축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흐린 날씨에도 산림축제장에는 흥이 넘쳤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간을 산림축제의 즐거움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허리케인 힐러리가 캘리포니아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비는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고, 미풍도 일지 않았다.

11년 전 인터뷰 말미에 테디에게 물었다. “인생의 모토가 무엇이냐?”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I’m glad I’m me and where I want to be.(나는 내가 나이며 내가 원하는 곳에 있는 것이 기쁘다.” 산림축제장에서 만난 테디는 앞으로도 10년 넘게 그 기쁨을 누릴 만큼 정정해 보였다.

2023 산림축제가 막을 내린 오후, 산길을 따라 내려오며 더 이상 산불이나 코로나 19 같은 재앙 때문에 산림축제가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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