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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공원에 울려 퍼진 광복절 노래
08/21/23  

이역만리(異域萬里) 고국을 떠나 살면서 고국과 관련해 감격에 겨워 가슴 뭉클함을 느끼는 순간은 흔치 않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아침, 감동과 감격으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매일 아침 8시 부에나파크시 Gilbert St.과 Beach Blvd. 사이 Rosecrans Ave. 선상에 있는 랄프 레저널 파크(Ralph B. Clark Regional Park)에서 60~70여 명이 모여 함께 체조를 한다. 평균연령이 80대 초반 정도 되니까 90을 넘긴 분들이 몇 분 계시고 80대 후반을 달리는 분들도 적지 않다.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외국인들도 10여 분 있다.

그 체조팀에서 광복절이던 지난 15일 체조를 마치고 광복절 기념식을 거행했다. 작년 10월부터 체조를 시작한 필자는 처음 참여하는 광복절 기념식이었다. 체조 팀에서만 처음이 아니라 미국에서 처음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우리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향해 섰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하고 미국 국가도 불렀다. 목사님이 기도를 마치자 한 미국 여인이 기도를 시작했다. 그녀는 기도 속에서 대한민국의 광복절 연도와 정부수립 연도까지 정확하게 언급했다. 특히 그녀의 남편이 한국전 참전용사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광복절 노래도 불렀다. 가사를 잊은 분들을 위해 집행부에서는 친절하게 미국 국가 가사와 광복절 노래 1절, 2절 가사를 유인물로 나누어 주었다.

광복절 노래는 마지막 부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나이도 성별도 잊고 모두 하나 되어 큰 소리로 불렀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식을 마치고 빵과 커피, 수박을 즐겼다. 식사하면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부 80대 후반의 어르신들은 모두 일본 이름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기념식 사회를 봤던 분은 자기에게는 이름이 네 개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이름, 그 이름의 한자, 일본 이름, 그리고 미국에 이민 와서 만든 미국 이름까지.

어르신 몇 분은 광복 전까지 우리말을 할 줄 몰랐다고 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일본어만 배웠고 한국어 사용을 금했기 때문에 한국말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광복 후에 비로소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고국을 떠나 살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다. 오래 전에 고국을 떠났지만 어르신들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었다. 체조팀이 결성된 이후 해마다 광복절 기념식을 거행해오고 있다. 몇몇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기념식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인회 등 여러 단체에서 기념식을 하는데 공원에서 체조하는 사람들까지 유난을 떨 필요가 있냐는 것이 반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들을 설득한 분은 “한인회 등 단체에서 개최하는 기념식에는 시간 맞춰 나가기 어려우니까 체조 끝나고 우리들끼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록 작은 규모이고 널리 알려지는 것도 아니지만, 기념식을 통해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은 어떤 단체의 기념식과 다르지 않다.”면서 “78주년 광복절을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자”고 말했다.

광복절(光復節). 우리 조국이 일제 식민지에서 국권을 회복한 이날을 우리 선조들은 독립기념일이나 해방일이라고 하지 않고 ‘빛을 되찾은 날’이란 뜻의 광복절이라고 했다. 참 멋지다. 지금까지 조국이 빛을 잃고 일본이 드리운 어둠 속에 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의 문화를 잃은 채 일본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 우리에게 조국이 있고 그 조국이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 경제와 문화를 앞장서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럽다.

랄프 공원의 광복절 기념식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감격과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8월 15일, 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광복절 노래를 힘차게 부를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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