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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잼버리 유감
08/14/23  

지난 9일, 서울의 친지들 몇 분이 백화점, 올림픽 공원, 조계사, 덕수궁, 경복궁 등지에서 외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사진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8월 1일 시작한 월드 잼버리가 12일 끝나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대원들이 중간에 야영장을 나와 서울 근교로 흩어져서 야영 대신 도시 관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집행부가 판단을 잘 했다. 35-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무리하게 야영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훌륭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야영 생활보다는 도시 관광이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하다. 야영이야 어디서 하든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단지 다른 나라에서 온 나와 모습이 다른 또래의 대원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재미가 더 있을 뿐이다. 그런 경험은 8월 1일부터 한 일주일 무더위를 견디며 했으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내가 처음 해외 야영대회에 참가했던 것은 1982년 대만 내셔널 잼버리였다. 대원 30여 명과 지도자 4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몇 차례 더 대만 잼버리에 참가했었는데 정확하게 연도는 기억하지 못하고 몇 가지 에피소드만 떠오른다. 한 번은 대만 지도자들과 함께 늦은 밤에 영지 밖에 있는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옆 자리의 손님들이 우리에게 막 소리치며 화를 냈다. 대만 지도자들이 자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왜 정부를 비난하냐‘고 하는 것 같았다. 대만 지도자들이 맞서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내는 사람을 향해 내가 아는 유일한 중국말 워아이니(아이러브유)를 응용해서 ’워아이중화민국‘이라고 계속해서 외쳤다. 그러자 화를 내던 사람들이 막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1984년 스웨덴 내셔널 잼버리에 한국대표단-중·고교 보이스카우트 대원 19명, 지도자1명- 단장으로 참가했다. 스톡홀름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서 코빠르보 야영장에서 1주일 정도 야영했다. 야영 기간 중에 한 대원이 발을 다쳐 치료를 받았다. 야영장을 떠나면서는 지팡이 신세를 지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가벼운 부상이었다. 오는 길에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지를 여행하고 런던에서 이틀 보내고 고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다. 그런데 항공사 사정으로 런던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했다. 물론 숙식은 항공사가 부담하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부담 없이 런던을 더 즐길 수 있는 보너스를 받은 셈이었다. 대원 19명과 대장 1명이 네 개 조로 나뉘어 지도 한 장씩 갖고 기차나 버스를 타고 런던 교외의 길웰 파크-보이스카우트 창시자 베이든 포웰 경이 최초의 스카우트 야영을 했던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길웰 파크에 도착해보니 우리 팀이 제일 늦게 도착했다. 다른 대원들이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1986년 알라스카 갬프 고르서치에서 인터내셔날 캠프 스텝으로 봉사한 적이 있다. 캠프 고르서치는 앵커리지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북쪽으로 올라가면 있는 보이스카우트 캠프장이다. 이곳에서 3주 이상 머물렀지만 야영생활은 모기에게 뜯긴 것 말고는 크게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주말마다 캠프 스텝 중의 한 사람 집에서 머물면서 있었던 일들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1987년 호주 제 16회 월드 잼버리에 참가했을 때는 잠시 야영장을 나와 몇몇 지도자들과 시드니 도심을 걸었던 적이 있다. 당시 스카우트 총재를 비롯한 몇몇 지도자들과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호텔로 들어가 물을 얻어 마시며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나온 적도 있었다.

이쯤 되면 독자들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 야영장보다는 야영장 밖에서의 활동이 참가자들에게 더 큰 의미를 줄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런 까닭에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 운행으로 인해 급히 준비됐던 한국 문화유산 답사나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참가자들에게 더 유익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미 예정된 야외 활동을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야말로 청소년기 대원들의 삶에 더 값진 경험으로 작용하지 않겠는가.

스카우트 표어는 세계 공통으로 ‘준비(Be Prepared)’이다. 이는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함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잼버리 기간은 애초에 폭염과 태풍 등 자연재해가 예상되었었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어떤 이유로든 -야영장 설비 준비 부족 때문이든, 태풍 등 자연 재해에 대비한 준비 부족이든- 새만금에서 야영대회를 무사히 마치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숙영지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최 측의 큰 불찰(不察)이 아닐 수 없다.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잼버리가 파행 운영된 것에 대해 사과를 전한다.

새만금 잼버리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폐영식과 함께 열린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잼버리는 많은 사람과 단체, 국가에 큰 교훈을 남겼다. 잼버리 참가 스카우트 대원들에게도 삶을 위한 유익한 경험이 되었길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잼버리를 두고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던 한국의 민의도 화해와 통합을 이루길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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