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치매(癡呆)
07/31/23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든 이곳에서든 만나는 5~60대 지인들이 서로 자기에게 치매 증세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증세라는 것이 건망증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예를 들면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데우기 위해 올려놓았다가 깜빡 잊어 냄비를 새까맣게 태웠다’, ‘가끔 친한 친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 말을 자꾸 되풀이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는다’ 등이 그것이다. 나 역시 해당되는 사항이 하나 둘이 아니다 보니 대화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치매 검사를 받은 분도 있었다. 필자도 2년 전에 주치의가 치매 검사를 하겠다며 다섯 개의 단어를 말하면서 내게 5분 후에 물을 테니 암기하라고 했다. 그 첫 머리 글자를 외웠다. ‘자동차, 만년필, 복숭아, 책상, 시계’라고 하는데 ‘자, 만, 복, 책, 시’이렇게 대여섯 번 소리 내어 반복하면서 외웠다. 초등학교 시절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조선시대 왕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외울 때처럼 소리 내기를 반복했다. 얼마 후에 의사가 물을 때 그 앞머리 글자를 떠올리면서 ‘자동차, 만년필, 복숭아, 책상, 시계‘라고 대답했다. 의사가 치매가 아니라고 했다. 정식으로 치매 검사를 받았다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 결과는 모두 치매가 아니고 건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럼 진짜 치매는 어떤 병일까? 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 언어, 판단 등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이 감소하여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병을 의미한다. 치매는 주로 알츠하이머병이라 불리는 노인성 치매와 중풍 등으로 인해 생기는 혈관성 치매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 밖에도 다양한 원인에 의해 치매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미개척 분야임이 확실하다.

지난 18일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알츠하이머병협회 국제학술회의에서 치매 등급 시스템을 발표했다. 그 발표에 의하면 미국 알츠하이머병협회(AA)와 국립 노화연구소(NIA)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환자의 인지기능 정도와 생리학적 변화에 따라 7단계로 분류하기로 했다. 증상의 경중에 따라 치매 등급을 매긴 2018년 지침을 바꿔 7단계 등급으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치매의 새로운 단계별 분류에 의하면 치매 등급을 치매 진행 단계에 따른 특정 생물지표와 인지기능 변화의 정도에 따라 1~7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는 다시 a, b, c, d 등급으로 세분했다. 예를 들어, 1기a 등급(1a)은 치매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최초의 등급을 말한다. 1기 이전의 단계로 0기(stage 0)도 추가했다.

이 새로운 치매 등급 시스템은 앞으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는 공청회를 거쳐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거나 보완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병협회는 치매의 진행 단계에 따라 특정생물지표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치매 단계에 따른 환자별 맞춤 치료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단계별 증상은 다음과 같다. 1기에서는 인지기능은 정상으로 보이지만 뇌에 병리학적 변화가 나타난다. 2기에 들어서면 가벼운 인지장애가 나타난다. 대개는 건망증과 구분하기 어렵다. 3기에는 경도인지장애(MCI)를 겪기 시작한다. 길을 잃거나 올바른 단어를 찾지 못한다. 4기는 중등도 치매로 단기 기억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지난날 중 일부를 기억하지 못한다. 5기에는 인지기능이 계속 떨어지면서 일상생활 영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6기는 중증 치매에 해당하며 지속적인 감시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가족과 친구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고 성격이 변한다. 마지막 단계인 7기는 죽음이 가까워지는 시기다. 운동기능이 떨어지고 소통이 불가능하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밥을 먹여 주어야 한다.

이렇게 치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명확히 그 원인을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치매의 증상 및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발생 기전이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고, 원인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도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망증 예방을 위해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것은 두뇌 회전을 많이 시킬 수 있는 놀이-건전한 수준의 게임, 바둑, 장기, 카드놀이와 같은 종합적인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놀이-를 하라는 것이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독서나 글을 쓰는 것도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아울러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생선과 야채를 즐겨 먹어야 한다. 또한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꾸준한 걷는 운동은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잘 자야한다. 충분한 수면이 건강의 가장 큰 자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라도 자신이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걱정에 앞서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부터 매일 일정한 시간만큼 신문이든 책이든 그 무엇이라도 읽고, 일기, 혹은 가족들에게 안부 편지라도 쓰고, 매일 30분씩이라도 꾸준히 걷는 등 정신적, 신체적 노력을 함께 기울인다면 치매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