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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고 걷자
07/24/23  

걸음이 빨라졌다. 의도적으로 빨리 걷는 것도 아닌데 빨라졌다. 매일 아침 함께 걷는 친구도 내 걸음이 빨라졌다고 했다. 친구와 내가 느끼는 것처럼 스마트 워치도 내가 1마일(1,6Km)을 19분에 걷는다고 알려주었다. 두 달 전에는 빨리 걸어야 23분,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걸으면 보통 26분 정도였다. 한국에 다녀온 후, 많이 빨라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내 걸음을 빠르게 한 것일까.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한국에서 두 달 머무르는 동안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자동차로 이동할 거리라도 대부분 걷거나 전철을 이용한 까닭이 아닌가 싶었다. 고국 도착하는 날에는 친구가 공항에 마중을 나왔고, 떠나는 날에는 택시를 이용했다. 그리고 두어 번 택시를 이용했을 뿐 모두 전철을 이용했고, 걸어 다녔다.

고국의 전철 노선은 정말 잘 짜여 있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 일원 수도권 대부분의 도시들이 전철을 이용하면 다 갈 수 있게 되어 있으니 불편함이 없었다. 서울 시내에서도 전철을 갈아타고 가더라도 택시보다 더 빠르게 갈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서울 도심의 교통체증은 낮이고 밤이고 심했다. 용산역까지 택시를 타고 간 적이 있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집에 올 때는 전철을 타고-한 번 갈아타고- 갔음에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만큼 전철이 편리하다. 시간도 비슷하게 걸리면서 요금은 훨씬 덜 드니 말이다.

그런데 이 전철을 이용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두 번 갈아타야 할 경우 환승하는 곳까지 가기 위해 꽤 많이 걸어야 한다. 간혹 방향을 구별하지 못해 목적지와 달리 역방향으로 가는 일도 있고, 특히 3개 노선이 만나는 곳에서는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두 달 동안 참 많이 걸었다. 내가 머물던 딸집에서 지하철역까지 7~8 분 정도 걸어야 하고 또 전철을 탄 후에 갈아타고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에 10,000보는 너끈히 걸어야 했다.

그런데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빠르게 걷는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남녀노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에 쫒기는 사람들처럼 뛰다시피 걷는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빠르게 걸었다. 처음에 나는 바쁜 일이 없으니까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사람들 물결에 휩쓸려 빠르게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무리 천천히 걸으려 해도 천천히 걸을 수가 없었다. 천천히 걷는 나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것은 보통이고 거의 밀다시피, 뒤에서 밀어붙이듯이 걷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을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운동 기능을 측정하면 노화 정도를 알 수 있다. 이 노화 정도는 앞으로 얼마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를 위해 체온, 호흡, 맥박, 혈압 수치 등의 바이탈 사인을 측정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걷는 속도'를 또 다른 바이탈 사인이라 부른다. 평소 빠른 걸음걸이를 유지하는 것이 ‘노화를 늦추고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는다.

‘편안하게 걸을 때 속도가 시간당 2.25마일(3,6Km) 이하인 사람은 시간당 2.25마일 이상인 사람에 비해 건강수명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걸음걸이만으로도 질병 없이 건강하게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영국 레스터대 연구진이 중년 성인 40만6천여 명의 유전자 데이터인 백혈구 텔로미어와 보행습관을 비교 분석해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평소 빠르게 걷는 사람(시속 4마일 이상)이 느리게 걷는 사람(시속 3마일 미만)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16년 더 젊었다. 백혈구 텔로미어는 생물학적 노화의 지표로, 빠르게 걷는 사람의 경우 길이가 더 길었다.

사용하면 할수록 기능이 떨어지는 신장이나 심장 등 다른 부위들과 달리 근육, 관절 같은 근골격계는 평소 적절한 강도로 많이 쓰는 것이 오히려 기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꾸준히 운동을 계속 하면서 빠른 걸음을 유지하며 바른 자세로 걷는다면 그만큼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다.

누구라도, 지금 질병에 시달리고 있을지라도, 혹은 노화 현상으로 신체에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매일 부지런히 걸으면서 운동을 일상화 한다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는다. 서너 달 지난 후에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춰 조금씩 속도를 빠르게 한다면 큰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달리 마켓에 갈 때도 자동차를 타야하는 이곳에서 ‘걸을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려면 반드시 걸어야 한다. 체온, 호흡, 맥박, 혈압 수치 등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걷기’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다. 부지런히 걷자.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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