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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칸트
07/10/23  

양재역 인근 식당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고국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도착했다. 양재역에서 내려 식당을 찾아 위치를 확인해 놓고 걷다 오기로 했다. 30-40분쯤 걷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했다. 지금 어디 있는가 물었다. 걷고 있는 길에서 보이는 건물과 간판 등을 알려주자 친구가 곧 다리가 나타날 텐데 다리 밑을 보면 양재천 산책길이 보인다면서 거기서 내려와 오른편으로 걸어오라고 했다. 잠시 걷다가 양재역 가는 길이라는 표시판이 나오면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자신이 거기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친구가 시키는 대로 다리 밑으로 내려가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양재천 산책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작은 동상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옆모습을 보면서 머리 모양으로 보아 미국 독립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내일 모레 독립기념일이라 헛것이 보이는 걸까? 뜬금없이 왜 이런 사람의 동상이 여기 있을까? 의문을 갖고 가까이 가서 보니 내가 생각한 두 사람이 아니고 독일 철학의 아버지 '임마누엘 칸트'였다. 양재천에 칸트가?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설명이 쓰여 있었다.

‘칸트, 언덕을 오르다’라는 제목 아래 다음의 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2022년 8월 하중도에서 떠내려간 칸트의 동상을 수면무대로 이동하여 구민과 함께하는 포토존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서초’ 서초는 서초구를 뜻하는 거다.

칸트의 동상을 양재천 변에서 만나다니 뜻밖이긴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대학시절 칸트를 가르치던 교수님들이 생각났고,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칸트는 한마디로 말하면 경험론과 합리론이 치고받고 싸우던 18세기 유럽 철학계를 평정한 철인이다. 칸트 이전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구분 자체가 없었다. 같은 경험론자인 영국의 여러 철학자들조차 같은 학파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플라톤 학파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라고 서로 구별하여 부를 정도였다. 이러한 학파 구분은 칸트 이후, 정확히 말해서는 칸트에 대한 연구가 극에 달하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와서야 비로소 정립되었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 하나로 17-18세기 존재하던 모든 영국과 유럽의 대륙철학자들을 단 2개의 학파로 양립시키고 그들이 대립하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한 후 이를 자기 방식으로 풀어낸 훌륭한 철학자이다. 근대철학은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얘기나 칸트를 모든 강물이 흘러들었다가 다시 갈라져 나가는 호수로 비유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이런 대 철인을 양재천에서 만나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시 동안 칸트의 동상이 이 산책로에 있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았다. 칸트는 생전에 규칙적인 생활을 한 사람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동네 사람들이 그가 걸어가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하니 양재천 산책길에 칸트의 동상이 있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한편, 그 칸트가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었고 그걸 건져 올려 이 자리에 세워두었다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세상에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감성만을 앞세우며 사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지 않은가?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깊이 있는 사유나 사고의 시간을 가지려 하지 않고 감정이 시키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다. 나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무조건 다 내 적이다. 정치판에서는 같은 당, 같은 노선을 걷는 사람들끼리도 감정적인 대립과 싸움을 하고 있으니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 다분하게 감성의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성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성을 잃고 감성이나 직관으로만 우리의 행동과 언어를 꾸려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경험을 토대로한 오성(悟性)과 이성을 거친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이 시대를 차분하게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홍수에 떠내려가다가 건져 올려져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양재천 칸트를 기억해야 한다.

양재천 산책길에서 양재역 방향 표시판을 보고 위로 올라오니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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