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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의 꿈
07/03/23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감독 황윤)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다.

영화 <수라>에는 전라북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앞바다를 연결하는 방조제를 쌓아 그 안에 간척 토지와 인공호수를 만드는 새만금 간척사업 옹호파와 반대파가 치열하게 싸우던 200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20여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황 감독은 모두가 외면해온 갯벌에 13년간 조사단이 꾸준히 걸음하며 쌓아온 데이터를 살핀 뒤, 이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7년간 갯벌과 어민들에게 깊숙이 다가가며 시야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터전을 잃은 어민들과 사라진 갯벌 생물의 잔재를 적나라하게 직시하면서도 이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밝힌다.

20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갯벌은 바닷물이 들고 나는 방향에 따라 물길을 내고, 깊게 팬 골들은 빛과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숨을 쉰다. 이곳에 터전을 꾸린 갯지렁이와 조개,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쇠제비갈매기, 흰발농게 등의 법정 보호종들 또한 저마다 생생하게 약동한다.

한국 정부는 조사단과 환경단체의 반발을 ‘갯벌은 이미 육지화된 지 오래이며 쓸모없는 땅’이라 일축하며 간척지에 새만금 신공항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수라>를 본 이라면, 이들이 갯벌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채 내린 판단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갯벌은 죽은 땅’이라는 오명을 뒤집기 위해 조사단과 황윤 감독은 그토록 오랜 시간 갯벌 생물의 움직임과 소리에 주목하며 기꺼이 기록해 왔다. <수라>에는 생에 대한 갯벌 동식물들의 의지, 그런 갯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집념이 촘촘히 응집돼 있다. 영화가 보여준 자연의 생명력에 압도되면서도 이들의 가치를 멋대로 판단하며 죽음을 재단한 인간의 오만함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건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 새만금에서 오는 8월 1일부터 12일까지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린다. 자연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스카우트가 그 땅 위에서 잼버리를 한다는 것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이런 필자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원로 스카우트 지도자 두 분이 새만금 세계 잼버리 야영장에 함께 가보자고 했다. 자연 파괴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사무실에는 대한민국 정부, 부안군, 전라북도에서 파견 나온 약 130여 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한국 스카우트 중앙본부에서 파견 나와 일하고 있는 정서용 특별활동팀 팀장이 약속도 없이 찾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면서 네 시간 동안 250여 만 평의 잼버리 야영장 현장을 곳곳으로 안내하면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우리들의 질문에 일일이 명쾌하게 답을 해줬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의 총면적은 약 8.8㎢로, 길이가 가장 긴 구간을 기준으로 가로 6.1㎞, 세로 1.8㎞에 달하며, 잼버리 야영장의 한쪽 면이 바다와 접하면서도 풍부한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넓은 대지 위에 조성되어 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국립공원인 변산반도에 인접해 있어 강에서의 수상활동, 바다에서의 해상활동은 물론 산과 들에서 펼치는 여러가지 과정활동을 전개하는데도 아주 유용한 장소임이 분명해 보였다.

단 간척지를 만든 후 여러 가지 이유로 버려진 땅으로 나둬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로 생각됐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책이 그늘막을 설치하고 넝쿨식물을 심어 그늘을 만든다는 것인데 현재 심어 논 나무들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쉼터 역할을 하는 그늘을 만들어내려면 앞으로도 일이 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이라 텐트와 그늘막 등이 잘 고정되어 있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정 팀장에게 이런 우려를 전했더니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조직위원회’도 두 가지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여러모로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새만금 야영장은 간척지로 만들어 놓고 방치해두었던 땅을 활용해서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파괴가 아니라 파괴된 현장을 어떻게 가꾸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현장이 될 수도 있다. 세계에서 모여든 5만여 명의 청소년들과 지도자들이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도 있다. 이번 세계 잼버리의 구호는 ‘Draw your dream(네 꿈을 펼쳐라!)’이다. 청소년들이 꾸는 꿈속에 우리들의 내일이 담겨 있다. 과연 새만금 잼보리에서 세계에서 모여든 5만여 명의 청소년들과 지도자들은 어떤 꿈을 꿀 것인가?

그들이 꾸는 꿈 가운데는 분명히 조화로운 보전과 개발로 미래에는 사람들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꿈도 있을 것이다. 이번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에도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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